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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강사로 12년 만에 외출, 두 아이 엄마 김성훈 씨

강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숫자를 쭉 읽어 내려가자 학생들이 ‘딱딱’거리며 주판알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계산이 끝나면 약속이나 한 듯 엄지와 검지로 주판알을 쫙 털었다. 학생들이 주판알을 튕기는 이 장면, 추억 속 흑백사진에 나오는 주산학원의 풍경이 아니다. 2016년 8월 23일 경기 광명시 철산초등학교 1학년 6반 교실에서 진행된 방과 후 학교 주산반의 수업 장면이다.

주판이 전성시대를 열었던 1980년대와 지금, 다른 게 있다면 단 하나. 학생들이 나무 주판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주판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스마트 세대로 불리는 요즘 아이들은 1980년대 아이들처럼 신발 밑에 주판을 달고 스케이트를 타지 않았다. 대신 책상에 앉아 얌전하게 주판알을 손으로 튕겼다. 주판을 만지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놀이’이자 ‘학습’인 듯했다.

방과 후 학교 주산반 강사인 김성훈(45) 씨는 “전자계산기의 보급으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던 주산이 10년 전부터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놀이수업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며 “1988년 상업고등학교에서 주산을 배울 때만 해도 ‘주판알을 다시 튕기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주산강사로 활동한 지 올해로 8년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2009년부터 주산강사로 활동했다.

 

고교 시절 익힌 주산, 직장생활 때 활용 못 해
경력단절 극복하고자 20년 만에 주판 꺼내

학창 시절 김 씨는 수학이 아니라 체육수업을 좋아하는 소녀였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선수로, 중학교 땐 핸드볼선수로 활동할 만큼 운동에 소질이 있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를 두고 주변 친구들은 “활동적인 일을 하면 잘할 것”이라고 했다. 그 자신도 훗날 운동선수가 될 줄 알았다.

김 씨의 다음 행보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운동 대신 취업을 해야 했고, 상고로 진학했다. 김 씨는 그때 주산을 처음 접했다. 다행히 그는 산수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주산 계산식을 금방 익혔다. 김 씨는 “우리 반에서 주판알을 가장 잘 튕기는 학생이었다”며 웃으면서 말했다.

김 씨는 상고 졸업 후 출판사 경리부 직원으로 입사했지만, 주판을 잡을 일이 없었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회계 처리가 전산화되면서 더 이상 주판알을 튕길 일이 없었진 것이다. 주산과 김 씨의 인연이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주산

▶고교 시절 익힌 주산으로 경력 단절을 극복한 김성훈 씨. 그는 “먼저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려야 세상이 내게 응답한다”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1997년, 김 씨는 결혼과 동시에 5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그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학부모가 되면서는 각종 학부모 모임에 적극 참가했는데,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들 중 직장생활을 하는 학부모가 있었어요. 학생 한 명이 ‘엄마가 일을 하고 있어 학부모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요’라고 말하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불현듯 ‘나도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오후 늦게까지 학원에 있자 김 씨에게 ‘시간’이 생겼다. 처음으로 맞는 자신만의 시간, 어색했지만 반가웠다. 이 시간을 활용해 무언가를 하면 좋을 듯했다. 막상 일을 하려고 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됐다. 오래전 일했던 경리 업무라면 헤매지 않고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를 위한 일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기업들이 경리직원을 대졸 사원이 아니면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8시간 근무하는 것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퇴짜 각오하고 주산수업 제안서 제출… 수업 기회 얻어
“먼저 세상 향해 문 두드려야 세상도 내게 응답”

그러던 어느 날, 지역신문에 게재된 광고가 김 씨의 눈에 띄었다. 2008년 11월 서울 강서구청이 시민대학을 개설했는데, 수강과목 중에 ‘주산’이 있었다. 김 씨는 고교 시절 접했던 주산과의 인연을 되새기며 수강신청서를 작성했다.

“당시 주산이 수학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주는 놀이학습으로 떠오르면서 재평가를 받는 분위기였어요. 주산강사의 수요가 늘어날 것은 자명했습니다. 그동안 틈틈이 아이들의 공부를 지도하면서 터득한 요령을 활용하면 학생들에게 주산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김 씨는 20년 만에 장롱 속에 깊이 넣어뒀던 주판을 다시 꺼내들었다. 학생으로 돌아간 그는 고교 시절처럼 신나게 주판알을 튕겼다. 그때 그의 실력을 주목한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강의를 맡았던 주산협회 간사였다. 그는 김 씨에게 주산암산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 강사로 활동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주산 2급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머리를 싸매고 앉아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결과는 합격.

김 씨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 서울 소재 수학학원 강사 자리를 소개받았다. 하지만 그 자리는 김 씨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밤 10시 훌쩍 넘어 수업이 끝나는 터라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떴던 김 씨로서는 맥이 탁 풀려버렸다.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자신을 정비하는 시간으로 삼기로 했다.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곧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현장을 찾아가 몸소 부딪쳐야 했습니다. 주산수업 제안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학교마다 찾아다니면서 수업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퇴짜 맞을까봐 두렵더군요. 한번 용기를 내니까 교무실 문턱 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그때 세상의 문을 두드린 덕분에 방과후학교 수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기회인 만큼 잘하고 싶었다. 김 씨는 체계적인 수업을 위해 학업을 병행하기로 결심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청소년학과)에 진학해 상담자격증, 청소년지도사,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보통 수학 교과목에 주산을 적용해 수업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기에 보드게임이나 체스 등 놀이학습을 추가로 활용해 주산암기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들의 학습 몰입도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교육 효과가 뛰어날 것 같았어요.”

김 씨는 시간을 투자해 자신만의 교수법을 만들었다. 보드게임과 체스를 배우며 놀이학습의 폭을 넓힌 것이다. 김 씨의 수업 방식은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방과 후 학교 주산수업 요청이 이어진 것이다. 김 씨는 현재 두 곳의 초등학교 방과 후 학교와 청소년수련관, 문화센터, 도서관에서 주산수업을 진행한다.

고교 시절 접한 주산으로 경력 단절을 극복한 김 씨는 경력단절여성의 재취업에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용기’라고 말한다. 열린 마음으로 나를 세상에 던져야 세상이 내게 응답한다는 것이다.

“주산강사로 활동하면서 만났던 동료 중에는 저보다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현재 활동하지 않아요. 자격증을 취득했으면 수업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나서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서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불편하고 부끄러워도 세상을 향해 문을 두드려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내게 응답을 한답니다.”

 

글· 김건희(위클리공감 기자)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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