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를 영어로 번역해 원작자 한강과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데버러 스미스의 말이다. 한 나라의 문학작품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이유로 최근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번역아카데미에선 매해 약 7개 언어권의 원어민 50여 명이 한국 문학을 전 세계에 알릴 메신저로 나아갈 채비를 한다. 2008년 아카데미가 개설된 이후 현재까지 500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했다. 5월 25일 번역원을 찾아 제2의 데버러 스미스를 꿈꾸고 있는 예비메신저들에게 한국 문학과 번역의 매력에 대해 물었다.
모스크바국립외국어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번역원에서 2년째 정규과정을 수강 중인 다리아 네스테러바(러시아), 한국 시(詩)의 매력에 빠져 지난해 번역원에 입학했다는 크세니야 호멜로니즈카야(러시아), 4년 전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번역원에서 박민규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고 있는 아그넬 조셉(인도) 씨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짙은 한국색·위트 있는 단편 매력적
번역은 '사전 찾기' 아닌 분위기 살리는 일
무엇보다 아직 세계의 변방에 머물러 있는 한국 문학에 이들이 매료된 이유가 궁금했다. 하성란 작가의 '옆집 여자'와 같은 단편을 좋아한다는 조셉 씨는 단편소설이 발달한 점이 한국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했다.
"서양 문학이 장편에 집중된 데 비해 한국은 단편이 아주 발달했어요.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단편이죠. 그 속에 담긴 독특한 주제의식과 문체는 한국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네스테러바 씨는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예로 들며 한 작품만 읽어도 한국의 독특한 문화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문학의 매력으로 꼽았다. 호멜로니즈카야 씨는 특히 이 같은 분위기는 고전문학과 시에서 더 깊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는 〈춘향전〉 같은 고전소설이나 일제강점기에 나온 이효석, 김소월의 작품을 좋아해요. 한국과 러시아는 한도 많고 정도 많다는 점이 비슷해서인 것 같아요. 오히려 문화가 많이 달라진 현대작품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러시아 역시 전쟁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그 시대에 나온 작품들은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이 같은 한국 문학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손을 걷어붙인 이들에게도 한국어와 한국 문학, 한국 문화를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번역은 결코 쉽지 않다. 존댓말이나 형용사가 발달한 우리말의 특징은 존댓말이 없고 부사가 발달한 영어를 사용하는 조셉 씨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호멜로니즈카야 씨에게는 한국 문화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글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예를 들어 '도시락'이 라면 이름이라는 걸 설명하지 않으면 외국인들은 도시락을 라면과 연관짓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 또 라면 자체가 없는 나라에선 라면으로 대변되는 싱글 생활이나, 그것이 주는 서민적 분위기 등도 느낄 수 없다. 단어의 문제가 작품 전체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번역은 단어와 단어를 일대일로 교환하는 '사전 찾기'가 아니다"라고 입을 모았다. 두 사람은 "번역은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사전적으로 뜻이 꼭 맞는 단어로 바꾸는 게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이상할 수 있다"면서 "글의 분위기를 살리는 것이 번역의 핵심임을 염두에 두면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이 외려 번역가에겐 작품을 다른 나라의 문화에 맞게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한편 네스테러바 씨는 독자가 해석할 여지가 많은 한국 단편소설의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봤다. 그는 "작품의 색깔이 매우 짙은 경우에는 두 사람의 말과 달리 번역가는 단어의 작은 디테일까지 이해하고 작가의 의도와 스타일을 그대로 살려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아그넬 조셉(인도), 다리아 네스테러바(러시아), 크세니야 호멜르니즈카야(러시아) 씨.
기존 한국 문학 번역작품 재검토해볼 시기
분단문학 뛰어넘을 젊은 작가 발굴도 과제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첫 숨을 불어줄 이들은 한국 문학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의견을 내보였다. 호멜로니즈카야 씨는 "개인적으로는 번역이 가장 어려운 시를 한국인과 공동으로 작업해 김소월의 작품을 알리는 게 꿈이지만 우선 한국 문학이 외국인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려면 익숙한 문화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게임회사가 만든 '아키에이지'라는 게임이 러시아에서 상당히 인기가 있어요. 이 게임 스토리를 배경으로 전민희 작가가 쓴 소설이 여럿 있는데 게임을 아는 젊은 번역가들이 이런 소설부터 러시아에서 출간을 하는 거죠. 제가 한국 영화를 본 뒤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 거예요."
네스테러바 씨는 "러시아에도 윤동주 시인이나 박완서, 이문열 작가의 작품은 이미 번역이 많이 돼 있는데 그중에는 번역이 잘못된 것들도 많다"면서 "한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지 않으려면 오역된 작품을 바로잡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국 작품 전반에 깔린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의 이상한 점 중 하나는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주인공들이 많다는 거예요.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끌려면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와줘야 해요."
이에 대해 조셉 씨는 "한국 문학이 어둡다는 편견은 분단문학의 영향이며, 〈채식주의자〉처럼 묵직한 소설도 인기를 끌 수 있다"고 응수했다. 그는 이어 "김중혁 같은 젊고 유쾌한 작가의 작품이 경쟁력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현재 번역 중인 박민규 작가의 〈더블〉이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영미 문학권에서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인터뷰|한국문학번역원 김성곤 원장

"번역대학원 만들어 제2의 데버러 양성하겠다"
한국문학번역원(이하 번역원)은 2013년부터 번역원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데버러 스미스의 〈채식주의자〉 번역작업을 지원해왔다. 작품이 지난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에 후보로 오른 뒤에는 한국 문학에 대한 현지의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집중했다.
미국의 문예지 〈마노아(Manoa)〉와 아시아 문학 전문 영자 문예지 〈ALR(Asia Literary Review)〉 전면에 걸쳐 한국 문학 특집을 내보냈고, 심사 결과 발표 직전에는 작가들과 영국을 방문해 BBC와 인터뷰를 하는 한편 런던대학 한국 문학 행사 등을 지원했다. 맨부커상 수상은 이 같은 노력이 이룬 결실이다.
번역원은 한국 문학을 세계에 알릴 번역가를 양성하고 한국 문학을 해외에 출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기관이다. 2001년 개원한 뒤 현재까지 총 34개 언어 1234건의 번역을 지원해 863종의 책을 출간했다. 김성곤 원장은 "〈채식주의자〉의 수상뿐 아니라 배수아 작가의 〈철수〉가 펜(PEN) 번역상 최종 후보에 오르는 등 올해는 번역원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는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부임 이후 영미 문학팀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번역원은 미국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를 통해 25권의 한국 문학 선집을 발간했다. 김 원장은 "이번 선집 출간은 일본이나 중국도 아직 시도하지 못한 대규모 사업으로, 번역서 출간 비중이 3%밖에 안 되는 미국 출판 시장에서 한국 문학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번역원은 교육부와 함께 번역아카데미를 대학원으로 승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 원장은 "번역은 새로운 풍토에 맞게 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젊은 번역가 양성에 힘써야 한다"면서 "학위를 수여하고 외국 대학과 학생 교류를 할 수 있는 번역대학원을 세워 번역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글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 사진 · 박해윤 기자 2016.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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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