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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감과 헌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제1회 대한민국 공무원상 시상식이 1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 상은 주요 국가 시책의 성과가 뛰어난 공무원들에게 공정한 포상을 통해 사기를 진작하려는 제도다. 제1회 수상자는 훈장(10명), 포장(10명) 대상자를 포함해 모두 84명(대통령 표창 36명, 국무총리 표창 28명)이다. 대한민국 공무원상 수상자는 후보로 추천된 611명에 대해 3개월간의 공개검증과 1, 2차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시상식에서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맡은 일을 수행한 공무원들을 격려했다. 전문성을 갖고 헌신한 우수 공무원들의 성과를 연속기획으로 소개한다.

 

 

■ 옥조근정훈장 수상자

성은학교 황윤의 교감

 

“쯧쯧, 많이 힘들겠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을 이런 식으로 대하죠, 이런 고정관념과 편견이 장애인을 진짜 장애인으로 만드는 거예요.”

 

경기 성남시의 성은학교 황윤의(61) 교감은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은학교는 지적장애 학생을 위한 공립 특수기관이다.

 

황 교감은 장애 학생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한 공로로 ‘대한민국 공무원상’ 훈장을 받았다. 그는 특히 중증·복합장애 학생들의 일자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50여 명을 일반 기업에 취업시켜 장애인의 자립 지원과 생산적 복지에 기여했다. 황 교감이 만든 프로그램은 전환교육센터와 통합형 직업교육 거점학교다.

 

“전환교육센터는 말 그대로 학교에서 사회 진출을 돕기 위한 전환 교육 프로그램이고요. 거점학교는 일반 학교에 장애인 직업 진로과정을 설치한 거예요.”

 

황윤의

 

황 교감이 장애인들의 아픔을 남보다 더 이해하게 된 것은 본인이 지체장애인(5급)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북돋아준 가족 덕분이었다. 한때 좌절 속에서 일어나 시야를 넓혀준 계기가 가족의 격려였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남을 돕는 데 남달랐던 그는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을 택했다.

 

황 교감은 그렇게 장애인을 위한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루 2시간만 자고 죽을 각오로 공부해 4년 전액장학금을 받고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장애인은 장애를 갖고 있지만 분명히 다른 강점을 갖고 있어요. 예를 들어 비장애인이 지루해할 수 있는 단추 끼우기 같은 일을 장애 학생이 정말 재미있게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황 교감은 그런 그들을 인턴사원으로 보냈다. 처음에는 손사래 치던 업체 사장들도 마음을 바꿨다. 그렇게 시간이 갈수록 취업하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요즘 황 교감은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단다. 바로 아나운서직에 도전하는 것이다.

 

“제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장애인들의 일을 세상에 더 알리고 싶어서죠. 아나운서, 꼭 할 거예요. 정말로요.”

“아이들이 떡볶이 사달라고 기다린다”며 인터뷰를 마친 황 교감의 말에서 엄마 같은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 근정포장 수상자

통계청 하봉채 서기관

 

“같은 공무원이지만 자료 요청을 하면 얼굴만 쳐다보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황당하다는 거였지요. 그런 까닭에 자료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데만 4년 걸렸습니다.”

 

인구주택 총조사 예산을 1400억 원 넘게 줄인 사람이 있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공무원상’ 포장을 수상한 통계청 하봉채(57) 서기관이다.

 

하 서기관은 5년마다 전수 방문조사로 실시하던 인구주택 총조사를 각 행정기관의 주민등록, 가족관계등록부, 주택 공시가격 등 공공정보를 활용해 통계를 낼 수 있게 했다. 방문조사에 들어가는 국가 예산을 대폭 줄인 것이다.

 

그는 이 일에 꼬박 8년 7개월을 매달렸다. 처음엔 행정자료가 들쭉날쭉한 데다 담당 공무원을 몇 번씩 찾아가 설득해야 했다. 결국 21종의 자료를 모았지만 이 작업만 4년 넘게 걸렸단다.

 

“가장 어려웠던 건 선례가 없다는 거였어요. 통계학과 교수들도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요. 그래서 해외에서 모델을 찾기로 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일을 배우러 갔죠.”

 

하봉채

 

우리와 꼭 맞진 않아도 이스라엘에 모델이 있었다. 다들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하 서기관은 이를 모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결국 그는 북유럽 등지에서 13~20년 걸린 일을 8년이란 짧은 기간에 해냈다.

 

하지만 힘든 작업이었다. 매일 야근하다시피 해 다른 과에서 하 서기관이 근무하는 곳으로 전출되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였지만 그는 일을 밀어붙였다. 공무원 16명이 고생하면 국민 5000만 명이 혜택을 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직원들도 힘을 내더라고요. 뻔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어차피 일하는 것, 국가에 대한 기여와 자부심을 갖고 일하자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 서기관은 1982년 서기보로 사회통계과(지금의 고용통계+복지통계) 공무원이 됐다. 그런데 그 과정이 재미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길을 걷다 우연히 그의 눈에 띈 것이 통계직 공무원 채용이 처음 실시된다는 공고였다. ‘1호 통계직 공무원’이 된 것이다.

 

이번에 하 서기관에게 포장을 안긴 작업 말고도 그가 개선한 일은 많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지만 그만의 방법으로 통계청 데이터베이스를 꾸준히 분석하고 고친 결과다. 바로 하 서기관은 일찌감치 신기술을 활용해 공공 문제를 해결하고 부처 간 장벽을 허무는 정부 3.0을 앞장서 실천해온 인물이다.

 

 

· 김용석 (객원기자) 2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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