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고 외친 청년이 있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파릇파릇한 젊음의 낮시간을 막노동판에서 보내고 밤에는 졸린 눈을 비비며 수험서를 펼쳤다. 이렇게 주경야독하여 1996년 대학시험에 도전해 합격했다. 그것도 서울대 인문계 수석으로!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장승수 님의 성공신화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기록한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저서를 냈는데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국은 등산족 천국이다. 일자리를 잃은 중년이나 은퇴 노년이 즐기는 대표적인 레저가 등산이다. 주요 등산로 입구는 난장을 방불케 한다. 전국의 여러 고산을 등정한 것을 큰 자랑거리로 여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백두대간을 다 밟았느니, 불수사도북(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5산 종주를 하루 만에 끝냈다느니 하는 무용담도 듣는다.
그런데 취미로 공부에 몰두하면 어떨까. 그 지겨운 공부가 취미라고? ‘입시지옥’을 겪은 한국인 대다수는 이런 반응을 보이리라. 그들은 ‘공부’라는 말만 들어도 진절머리를 낸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독서와는 이별이다. 대학 졸업자 가운데 1년에 책 1권을 제대로 읽지 않고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적잖다. 독서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았으니 은퇴 후 긴긴 시간을 맛집 순례로 방황한다. 무슨 방송에서 소개됐다는 식당에 가서 욕쟁이 할머니 주인에게 욕을 들어가며 입맛을 만족시켜도 마음은 늘 허허롭다.
필자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치른 세대다. 고입, 대입의 ‘박 터지는’ 경쟁은 말할 것도 없다. 합격을 위한 공부일 뿐이었다. 암기식이라느니 주입식이라느니 비판받는 학습이었지만, 그 반강제적 방법 덕분에 소크라테스도 알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도 배웠다. 영어, 불어를 배워 외국인과 더듬거리며 의사소통도 한다.

세월이 흘러 입시공부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역설적으로 지식에 대한 갈증에 ‘타는 목마름’이 생겼다. 이름만 들었을 뿐인 <매천야록>, <택리지> 등 한국 고전을 읽거나 사마천의 <사기>를 완독했을 때의 쾌감은 한라산 정상에 오른 것 못지않게 짜릿했다. <레미제라블>을 영화와 뮤지컬로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5권짜리 완역본을 독파하니 성취감이 더 컸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다닌 사람은 대개 졸업 후 수학, 과학과는 결별한다. 그러나 요즘 우주와 삶의 원리를 이해하려면 자연과학 지식이 필수임을 깨달았다. 이 분야 책에 손길이 자꾸 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을 훑어보니 천문학, 생물학 지식이 더 그리워진다. 서점에 가서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물리, 화학, 생물, 지학 교과서를 펼쳐봤더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공부 기회는 도처에 널려 있다. 구청이나 문화센터의 인문학 강좌도 숱하고 대학에 가면 이런저런 세미나, 심포지엄, 학술강연 등이 무시로 열린다. 이런 곳에서 수십 년 내공을 쌓은 석학의 열정 넘치는 강의를 들으면 머리와 마음이 부자가 되는 기분이다. 어떤가. 공부가 재미있지 않겠는가.
글·고승철 (소설가. 장편소설 <소설 서재필> <은빛 까마귀> <개마고원> 등 발표) 201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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