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광복둥이 치열한 삶 시련과 영광의 훈장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광복한 1945년에 태어난 광복둥이들. 올해는 일제 36년의 압제에서 벗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로, 광복둥이의 나이는 만 70세다. 대한민국의 격동기를 지나온 광복둥이들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위클리 공감>은 광복둥이로서 치열하게 일생을 살아온 이해인 수녀, 이장호 영화감독, 배한성 성우에게 대한민국의 영광과 시련의 순간, 그리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궤를 함께해온 자신들의 영광과 시련의 순간을 물었다.

 

대한민국의 영광의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해인 대한민국의 영광적인 단면은 식민지로부터의 광복, 88 서울올림픽,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글로벌 인재의 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장호 대한민국의 위대한 영광은 미래에 올 것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이 수많은 시련을 극복하면 위대한 영광을 얻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그런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영광을 맞이할 수 있도록 시련을 잘 극복해가길 바랍니다.

배한성 대한민국의 영광의 순간은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광복을 쟁취하려는 치열한 역사가 없었다면 광복을 맞이할 수도 없었고, 설령 광복이 됐다고 해도 광복의 의미를 되새길 수 없었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시련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이해인 남북한의 갈등과 대립으로 빚어진 민족의 슬픔(6·25전쟁)을 들 수 있겠지요. 광복 후 물질의 풍요를 얻었으나 윤리·도덕은 빛을 잃고 자살률,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도 시련입니다.

이장호 우선 좌우 이념 대립에서부터 6·25전쟁으로 시련이 시작됐는데 그 후에도 사회, 정치적인 위기가 많았지요. 최근 우리에게 닥친 시련은 세월호 침몰입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해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전 국민의 반성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배한성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기술을 받아들이는 한편 군사력을 증강한 일이 대한민국 시련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주변국을 약탈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에게 닥쳤던 가장 큰 시련을 꼽는다면.

이해인 어린 시절에 경험한 전쟁의 상흔, 부친의 납치, 피난살이 체험들이 제 정서에도 우울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봅니다.

이장호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선정한 '역대 한국 영화 베스트 10'에 뽑힌 제 영화 3편 모두 시련에 빠져 있을 때 만들었습니다. 우선 <별들의 고향>은 힘든 시절인 조감독 때 만들었고, <바람 불어 좋은 날>은 대마초 흡입으로 4년 동안 활동 정지 명령을 받았을 때 한국 영화에 리얼리즘을 회복하고자 만든 겁니다. <바보 선언>은 영화 정책에 대한 반항심으로 영화를 일부러 망치려고 시나리오 없이 만들었는데 도리어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배한성 어릴 적 시련이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월북하셔서 네 살 때부터 아버지 없이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고생 모르고 자란 분이라 생활 능력이 없으셨지요. 그래서 중학생 때부터 신문 배달을 하며 어머니와 동생을 뒷바라지했고, 수업료가 없어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자신에게 영광의 순간은 언제였는지요.

이해인 수녀원에 입회해 수도생활의 행복을 맛보았고 이 작은 시인이 쓴 글들을 많은 독자들이 사랑해주는 것입니다.

이장호 종교를 갖게 된 겁니다. 또 영화감독으로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역대 한국 영화 100선'을 뽑았는데 그중 베스트 10위 안에 제 영화 3편이 선정된 것도 영광이지요.

배한성 대학 입학과 방송국 입사가 영광의 순간입니다. 중학교 동창이 친척한테 돈을 빌려서 등록금을 마련해준 덕분에 서라벌예술대학 방송학과에 진학해 대한민국 연극연출사의 큰 어른인 이원경 교수님께 기초를 잘 배웠죠. 하지만 그마저도 돈이 없어서 그만둬 낙심했는데 다행히 1966년 방송국에 성우로 합격했어요. 동생 고등학교만큼은 졸업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 악물고 살면서, 극장 앞에 있는 <내 생의 최고의 해>라는 영화 포스터 앞에서 '나에게는 그런 해가 언제나 올까' 하고 막 울었는데, 마침내 그해가 왔어요.

 

대한민국이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이해인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끈기와 인내, 역경 속에 더 빛나는 공동체 구성원 간의 결속력, 가족 간의 사랑이 대한민국을 영광의 순간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장호 국가적으로는 국민들의 교육열이 대한민국을 일어서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련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면서 위기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배한성 가난이 저의 에너지였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적으로는 국민들이 '내 자식들은 나처럼 힘들게 살게 하지 않겠다'는 자각으로, 자식들을 먹이고 가르친 덕분에 위대한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요.

4

 

이해인

이해인 수녀·시인

1964년 올리베타노 성베네딕토수녀회에 입회한 이후 '해인'이라는 필명으로 가톨릭에서 발간하는 <소년>지에 작품을 투고했다. 1976년 첫 시집인 <민들레의 영토>를 발간했다. 그의 작품인 '말의 빛'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이장호

이장호 영화감독

신상옥 감독이 만든 신필름에서 일하다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데뷔했다. 대표작으로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바보 선언>(1982), <어우동>(1985),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1987)가 있다. 1970, 8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배한성

배한성 성우

1966년 TBC 성우로 입사했다. <가제트>, <아마데우스>, <맥가이버> 등 수많은 외화에서 지적이면서도 코믹한 목소리를 선보였다. 이후 TBS 라디오 프로그램 '함께 가는 저녁길 배한성, 송도순입니다', MBC 표준FM의 '배한성의 고전열전' 등을 진행하며 DJ로도 활약한다.


· 이헤민 (위클리 공감 기자) 2015.08.10



지금 정책주간지 'K-공감' 뉴스레터를 구독하시고,
이메일로 다양한 소식을 받아보세요.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