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모두가 기다리는 퇴근 시간. 직장인 조재우(27) 씨에게 퇴근은 또 다른 시작이다. 지난해 창원대 메카융합과 14학번으로 입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재우 씨는 “당연히 힘들다”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무엇이 재우 씨로 하여금 스스로 그 힘든 두 길을 걷게 한 걸까.
재우 씨는 현재 한화테크윈에서 항공기 엔진 정밀기계 가공을 담당하고 있다. 입사 5년 차. 스물두 살에 입사해 스물다섯에 사내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대리 직급인 기원으로 진급했다. 남보다 빠른 승진의 원동력을 묻자 그에게선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세계대회 금메달’이라는 불편한 가면을 벗기 위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 재우씨는 2009년 캐나다 캘거리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CNC선반(프로그래밍을 통해 제품을 절삭 가공하는 수치 제어 선반)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회사에서는 기술대회에서 우승한 직원을 대상으로 1계급 특진을 시켜줍니다. 그런데 실제로 산업 현장에서 수년간 기술력을 닦은 능인들 앞에선 세계대회 금메달 수상자라는 타이틀도 화려한 가면에 불과하더군요. 덕분에 남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업무에서도 남보다 두 배로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재우 씨가 기능올림픽에 도전할 꿈을 꾼 것은 부산기계공고 1학년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늦은 밤 자정이 넘도록 학교 실습장에서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기능특별활동생(이하 기능특활생) 선배들의 모습은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른 취업해 돈을 벌겠다’던 그의 단순한 목표를 돌아보게 했다. IMF 시절 어려워진 가정형편 탓에 생활고의 무게를 어서 벗어던져야 한다는 일념으로 진학한 공고에서 새로운 꿈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간단한 기술만 배우는 일반 학생들보다 훨씬 심도 깊은 실습을 해볼 수 있다는 데 끌렸어요. 그래서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한다 해도 취업을 하는 데는 오히려 유리할 수가 있죠.”

▷“선취업 후진학은 인생의 지름길이 될 수 있어요.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징검다리도 되어줍니다.”
국제기능올림픽 출전
CNC선반서 16년 만에 금메달
기능특활생들은 정규 수업에 들어가는 대신 2년 동안 전문적인 기술 수업을 받으며 대회를 준비한다. 그렇게 2년간의 준비를 마친 재우 씨는 2007년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금메달, 제42회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거뒀고, 여러 회사로부터 입사 제안을 받았다.
그런데 한화테크윈(당시 삼성테크윈)은 2년마다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할 수 있도록 국가대표 선발 과정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회사에서는 1년간 지식정보연수소(사내 기능올림픽 전담 부서)에서 고가의 장비와 지도교사를 지원해 대회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은 안 하지만 정식 사원 신분이었기에 월급도 받았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재우 씨는 CNC선반 부문 국제기능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유례없는 만점을 기록하며 이 부문에서 독보적인 강자였던 일본을 제치고 16년 만에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경제적 어려움에 짓눌려 있던 저에게 꿈같은 일들이 펼쳐지기 시작했어요. 대통령과의 만찬, 동탑산업훈장 수상, 각종 상금과 연금 혜택, 언론과의 인터뷰…. 그리고 드디어 직업인 조재우로서의 삶도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목표를 너무 일찍 이룬 탓일까. 어느 순간 그에게 존재를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몰려왔다. 20대 중반이 되어 만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재우 씨는 군대 제대 후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정작 스스로는 영화 <모던 타임스>의 한 장면처럼 반복되는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다.
“한 번도 꿈꿔보지 못한 대학 공부를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죠. 고졸 취업은 정말 잘한 일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 백 번이고 참 잘한 일이라고 대답할 순 있었지만 고졸이라는 학력의 벽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곤 했습니다.”
학교서 배운 이론 업무에 적용
대한민국 명장의 꿈 징검다리
학력의 벽을 직업적 전문성으로 뛰어넘기 위해 재우 씨는 일반 기계기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책 속에는 각종 수학 공식들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고 처음 보는 전문용어가 난무했다. 실기 위주로만 실습해온 그에게 이론적 전문지식은 마치 ‘외계어’ 같았다. 그 순간, 진정한 세계 1등이 되기 위해선 이론적 전문지식을 겸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즈음 재우 씨는 사내 게시판에서 ‘특성화고 졸업 재직자 특별전형 대학생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특성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이상 회사에 근무하면 수능을 보지 않고 재직 경력과 면접을 통해 입학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때마침 부산기계공고가 특성화고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재우 씨는 이 전형을 통해 창원대 메카융합학과 14학번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재우 씨가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근무조를 바꿔주고 잔업을 위한 근무에서도 배려해주었다. 그 덕분에 재우 씨도 이론 수업을 실무에 적용해 더욱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공학설계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적용해 회사의 품질 불량 문제를 해결하고, 공학영어 수업 덕분에 외국인 엔지니어들과 대화도 가능해졌다. 특히 자기 회사 업무의 개선점을 목표로 정하고 개선 진행 과정을 보고하는 현장역량 강화 발표는 취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학교에서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를 아는 뜻있고 열정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또 취업과 학업을 병행하는 저에 대해 ‘맡은 일을 위해 고민하는 직원, 도전하고 발전하는 직원’으로 평가해주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대한민국 명장이 되는 것이다. 이는 숙련기술 기능인을 대상으로 임명하는데 20년 이상 재직 경력 및 특허 출원, 각종 자격증을 요한다. 재우 씨는 이를 위해 최근 기계가공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모교의 기능특활생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그는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길을 따라오라 말한다. “남들과 다른 길이 때론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선취업 후진학은 인생의 지름길이 될 수 있어요.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징검다리도 되어줍니다.”
글 · 조영실 (위클리 공감 기자) 201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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