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 위치한 화봉책박물관은 그리 화려한 전시장은 아니다. 인사동 사거리 언저리에 있는 백상빌딩 지하 1층에 자리한 박물관은 문패를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눈 밝게 찾아간 관람객이라면 엄청난 장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곳에서는 13세기에 씌어진 <삼국유사>부터 16세기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 우리 역사를 살필 수 있는 고서(古書)들을 볼 수 있어서다. 여승구(80) 화봉책박물관장은 “지난 30여 년 동안 고서들을 수집했다”며 “현재 10만여 권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 관장은 국내에서 대표적인 고서 수집가다. 고서 수집을 위해 그동안 인사동 고서점과 청계천 헌책방을 뒤지는 건 일상이었고 국내는 물론 외국 출장을 갔을 때도 일정을 마치면 무조건 고서점에 들르는 게 당연했을 정도다. 그는 “고서는 당대의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귀한 자료이자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는 게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가 고서 수집에 뛰어든 것은 1962년 창립한 화봉문고 20주년 기념행사인 ‘서울 북페어’에서다. 화봉문고는 외국 학술잡지와 일반 도서를 수입 판매하는 회사로 당시 외국 서적 수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화봉(華峰)이라는 이름은 그의 고향인 전남 담양에 있는 동네 뒷산 이름에서 따왔다.
당시 ‘서울 북페어’는 국내 최초로 열린 국제 규모의 도서박람회로 관련 분야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유명 학원의 한 국어강사가 그를 찾아와 <님의 침묵> 등 현대시와 소설 초판본 200여 권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여 관장은 몽땅 사들인 그 책으로 처음에는 북페어 에서 ‘한국문학작품 초판본’ 소전시회를 개최한 뒤 북페어가 끝나면 책들을 경매에 부치려고 했다. 애당초 고서 수집 같은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한 언론사의 문화부장이 꺼낸 말이 불씨가 됐다. “여 관장, 그것을 왜 팝니까. 이 기회에 고서 수집을 시작해서 나중에 박물관 하나 만드시죠”라는 말이었다.
중학교 때 시인 지망생으로 여전히 문학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던 그였기에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결국 다음날로 계획했던 경매를 유찰시키고 고서 수집가의 길을 걷게 됐다.
고서 수집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고민을 하다 당시 고서 수집가이자 서지학자인 고(故) 안춘근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문학서만 수집하려 했지만 고서의 매력에 빠지면서 역사·문화·지도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그는 현재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제왕운기>까지 수집했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이들 고려시대 세 책의 판본은 조선 초에 나온 것이다. 또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춘향전>도 300여 권을 수집했다. 그는 <대동여지도> 전책도 가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 30점도 채 안 되는데, 그 중 한 점이 그에게 있다. 수집한 고서들은 시대순·인물순으로 서가에 정리해 놓고 새로 책을 구입할 때 마다 사이사이 채워나간다.
그는 역사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여 관장은 “책을 모으는 재미가 엄청났다”며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책은 나의 운명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두 달에 한 번 고서 경매 수수료로 책 관리
그러나 30년간 책만 수집하다 보니 어려움도 있었다. 그는 “고서 수집에 몰두하느라 사업에 신경을 못 써 경영난이 왔다”며 “그래도 책은 팔 수 없어 보유한 빌딩을 팔았다”고 말했다. 여 관장은 현재 책박물관 260여 평방미터와 성북동에 있는 화봉문고 200여 평방미터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별도의 수입이 없는 탓에 책박물관을 유지하는 것에 재력의 한계를 느낀다는 그다. 그래서 4년 전부터 박물관을 대관해 주고 고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책 관리를 위해 매월 4천만원씩 관리비가 들어간다”며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박물관에 있는 책과 일반인들이 내놓은 고서들을 두 달에 한 번 경매에 붙여 수수료로 수입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300~500개 고서들이 경매에 나오는데 절반 이상 팔린다”고 덧붙였다. 지난 4월 19일에도 박물관에서 25회 ‘화봉현장경매’를 진행했다. 책 한 권의 가격은 20만원부터 수억원에 달했다.
그가 이처럼 지금까지 모은 전 재산을 들이면서 박물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독일의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발명’보다 무려 100년을 앞서는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인쇄문화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하기 위해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성직자와 지식인들만 읽을 수 있었던 성서를 대중화했다.
그는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박물관을 키워 나가겠다면 흔쾌히 바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 관장은 성북동에 있는 화봉문고 사무실에 365일 내내 출근한다.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빼곡이 들어차 있는 고서의 묵향을 맡아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씩 고서들이 ‘웬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정도로 힘들 때가 많지만 고서들은 나와 인생을 함께한 동반자”라며 “고서 수집은 내가 생을 다할 때까지 해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글·김성희 / 사진·전민규 기자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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