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 1월 15일 오후 부산시 북구 화명동 북부소방서는 뜻밖에 한가한 분위기였다. 소방관 몇 명이 소방차를 손보고 있었다.
일부는 소방서 구석진 곳을 청소하는 참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은 고요한 상태, 평화다. 소방관과 가장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다.
소방서 안 화명119안전센터에서 만난 차광석(53) 팀장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부산에서 소방관으로 입문했다. 한 육류 유통업체 생산·영업직 사원으로 일하다 스물여덟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과감히 진로를 바꿨다. 좀 더 보람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소방관으로 일하던 친구의 말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소방관은 화재현장에서 불이나 끄는 사람이라는 것이 일반의 인식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소방관으로 일하던 친구로부터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구급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이런 일이라면 앞으로 보람되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첫 발령지는 부산 북항 5부두에 있는 부산항만소방서였다. 항만소방서는 이름처럼 주로 선박의 화재를 진압하는 역할을 한다. 차 팀장의 생애 첫 화재현장도 선박이었다. 선원 네 명이 탄 작은 배에 불이 난 것이었다. 작은 배여서 출입구가 하나였다. 출입구 쪽 불길이 워낙 강해 선원들이 선실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죽음 앞에 선 선원들의 탈출 노력은 필사적이었다. 덮쳐오는 화마의 위협 속에서 선원들은 선실 안 작은 유리창 쪽으로 모여들었다. 유리창이 작아 몸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팔만 간신히 내밀고 흔들며 비명을 질러댔다.
신참인 차 소방관의 마음은 급했지만 불길은 마음먹은 대로 잘 잡히지 않았다.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희생되고 세 사람이 심한 화상을 입고 난 뒤에야 불길이 사그라졌다. ‘요구조자’들의 절박한 모습은 한동안 차 팀장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지난해 8월 1일 부산시 사상구 감정동 신발제조공장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고 김영식 팀장과는 첫 발령지인 부산항만소방서에서 만났다. 북부소방서 삼락센터 소속이었던 김 팀장은 화재를 진화한 뒤 인명수색을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변을 당했다. 5층에서 균형을 잃어 2층으로 추락해 숨졌다. 차 팀장도 당시 같은 화재현장에 출동했다. 차 팀장은 “불길이 잡히고 난 뒤 제가 소속된 팀은 먼저 철수했습니다. 그때 김영식 씨와 눈이 마주쳐 싱긋 웃으며 눈인사를 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나이는 김 팀장이 두 살 위였지만 소방관생활 내내 가깝게 지냈는데…. 김 팀장의 부인과 노모를 생각하면 아직도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에만 부산에서 2명, 전국적으로 8명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순직했다. 화재나 구급현장에는 위험이 상존한다. 언제 어디서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 차 팀장도 아찔한 순간을 여러 번 경험했다. 1996년 어느 날 짙은 어둠이 깔린 새벽 3시께였다. 고속도로에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전복됐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차량 안에 갇힌 운전자를 구조하던 순간 갑자기 ‘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 졸음운전을 하던 다른 차량이 전복된 SUV를 뒤에서 들이받은 것이었다. 다행히 차 팀장과 차량 운전자들은 별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만 방향이 달랐더라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
하루하루 위험 속에 살아가는 소방관들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그리 후하지 않은 편이다. 소방관들의 삶을 다룬 영화 <타워>가 흥행하자 인터넷에는 ‘영화 타워처럼 화재현장에 출동하면 위험수당 13만원’이라는 기사가 관심을 끌었다. 알고 보니 13만원은 출동할 때마다 나오는 수당이 아니라 월 수당이었다. 위험수당 5만원에 화재진화수당 8만원 등 총 13만원이 매달 급여에 더해 지급된다는 것이다. 12시간 단위로 3교대, 한 번 출근하면 평균 일곱 번 출동한다는 일선 소방관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대가치고는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니다. 위험하고 봉급도 적은데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차 팀장이 천천히 입을 뗐다. “박봉은 맞지만 봉급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적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디서 이런 멋지고 보람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김해 중국민항기 추락사고부터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할머니와 손자를 구조한 일까지, 위험에 빠진 사람을 살리는 일이 보람으로 느껴져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이 국민에게 대한민국 최고직업이라고 인식돼 자녀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는 차 팀장. 그는 쉬는 날에도 체력 단련에 여념이 없다.
“고층아파트에 불이 나면 20킬로그램에 달하는 장비를 착용하고 걸어서 현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1초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 비번 날에도 등산이나 배드민턴으로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모든 소방관이 업무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합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고 생활하십시오’라고 말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죠.”
상황실 벨이 울렸다. 차 팀장은 인사도 잊은 채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글과 사진·박정민 (국제신문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