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지극한 애연가였습니다. ‘지극하다’는 말에는… 담배는 물론이고 담배 연기, 그리고 담배와 연관된 모든 형이상학적 가치마저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겠지요. 사물의 본질 혹은 존재의 근본원리를 사유나 직관에 의하여 탐구하기보다 담배, 혹은 담배 연기와 연관시켜 결정 짓는 ‘지적 무뢰한’이라는 말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를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담배에 서린 분위기를 좋아했던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동네 형님에게서 빌린 양복에 구두를 꺾어 신고 3류 영화관엘 들어가면, 영사막 주위에는 뿌옇게 담배 연기가 번지곤 했지요. 하지만 나는 그 매캐한 연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여기가 사나이들의 진정한 휴식처로구나” 하는 생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흉내내며 담배 피우던 ‘어리숙한 낭만’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담배 잘 피우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쉽사리 매료되곤 했습니다. <카사블랑카>에서는 미국식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푸른빛 아련한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는 ‘험프리 보가트’의 표정에 반했지요. 사포처럼 거칠기만 한 사내들에게도 애틋한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뿐인가요?
<황야의 무법자>를 보고 나서는 시거를 질겅이는 무법자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 정의란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좀 굵어지고 지적 허영에 빠져들면서부터는 코트 깃을 바짝 세워올린 채 꽁초를 피우는 ‘알베르 카뮈’의 모습을 아예 내 인생의 간판 이미지로 지정해 놓기까지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 세 사람을 흉내내며 담배를 피워대곤 했을 것입니다. 어수룩한 낭만이었지요.
담배 잘 피운다고 훌륭한 글쟁이가 되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담배 잘 피우던 나는 어찌어찌하여 글쟁이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나날의 반쯤을 낭만에 덜미 잡힌 채로 말이지요. 하지만 그 시절, 내 주위에는 유독 가난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낭만과는 거리가 먼 친구들. 등록금을 충당하지 못해 학업을 포기했던 그들은… 포장마차 주인이 되어 사냥꾼처럼 거리의 술꾼을 유혹하거나, 늦은 밤까지 호떡을 팔거나, 한 달에 하루밖에 쉬지 못하며 공장에 다니던 그 친구들은… 어쩌면 분노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유난스럽게도 세상이 시리고 아프다며 엄살을 떨던 사람은 오히려 글쟁이 흉내에 잔뜩 빠져 있던 나 자신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실상은 보지 못하고 허상이 맺힌 안경을 쓴 채 헛것만을 주시하며 살았던 셈이지요.
그 후 4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벚꽃 지듯 대번에 담배를 끊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담배와 사랑에 빠졌던 애연가이지만, 본능적으로 담배와 이별할 시기가 되었음을 절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담배를 끊고 난 뒤에야 나는 그동안 한갓 ‘풀을 태우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깨달음과 함께 그동안 담배와 연관 지었던 모든 형이상학적 가치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나는 그동안 험프리 보가트처럼 사랑했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정의로웠으며, 알베르 카뮈처럼 지성적으로 살아온 줄로만 알았는데 웬걸, 가난한 친구들, 춥고 고달픈 친구들의 고통과 분노를 철저히 외면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어수룩하게도 스스로를 낭만주의자라고 착각해 가면서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사실 내가 진작부터 여러분들께 하고 싶었던 말은 그깟 담배 좀 끊었다는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40년간 담배와 연애했던 어느 글쟁이가 담배 끊듯, 우리를 현혹하는 도덕적 망설임을 과감히 끊어버리자는 부탁이지요. 사물의 본질을 왜곡하지 말고 꿰뚫어 사유하자는 것입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곧게 보자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도덕적 딜레마에서 벗어나 길을 바로 찾아가자
특권의식, 권위의식, 안전불감증, 편 가르기, 집단따돌림… 이 모든 현상들이야말로 우리들이 도덕적으로 망설이며 현실을 외면한 결과물들입니다. 세월호 사고, 리조트 붕괴, 연수원 화재 등 각종 안전사고와 급등하는 자살률 따위도 우리들이 원칙이나 대의를 왜곡했기 때문에 생긴 일들입니다. 조작, 은폐, 윤리적 딜레마, 슈퍼 갑, 지역갈등, 비선논란 등등 요즘 언론에서 떠드는 온갖 해괴한 일들도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우리들이 길을 바로 찾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일들입니다.
이제 2014년 내내 떠다니던 썩은 부유물들을 모두 걷어내 버리고 갑시다. 어느 글쟁이가 담배 끊듯, 혹은 벚꽃 지듯 단숨에 없애 버립시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비운 상태에서 무엇이 이 시대의 가치를 결정하는지를 찾아내야만 도덕과 정의가 살아 숨쉬는 2015년, 새시대를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채희문(소설가) 2014.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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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