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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52) 교수는 서울대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최초의 외국인이다. 그는 1983년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후 꾸준히 한글과 한국 문화를 연구해왔고, 2008년부터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수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온 파우저 교수는 한국 지인들을 만날 때면 한국 문화와 역사에 자긍심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한국은 고유의 문화를 발전시켜온 문명국입니다. 하지만 서양 사람들을 만날 때 지나치게 겸손한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고유의 문화를 미국이나 유럽의 기준에 고민 없이 적용하는 모습을 보면 한마디할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 사람들에게 이게 한국 문화니 너희가 이를 존중하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는 성명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식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한국인의 명함에는 서양식으로 이름 다음에 성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유를 물어보면 “그래야 외국 사람이 쉽게 이해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파우저 교수는 이런 모습이 너무 답답하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이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원래 한국 이름 순서대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왜 ‘길동 홍’으로 바꿔야 합니까? 성과 이름의 순서는 정체성 차원에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 고유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 로버트 파우저의 순서를 바꿔서 파우저 로버트라고 부르면 어색하지 않냐고 묻는다. 영어식 이름의 정체성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성명을 표기할 때 성 뒤에 쉼표를 놓는 일도 피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어에 없는 개념을 굳이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면서 “외국인을 위한 배려는 좋지만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살린 다음에 생각할 일”이라고 말했다. 파우저 교수는 개개인의 성명 표기가 작은 것 같지만 그것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수많은 작은 습관이 모여 한국인을 만드는 것이기에 언어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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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준과 문화 정체성 구분해야

파우저 교수의 여동생은 결혼한 뒤에도 자신의 성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한다. 여동생의 신랑이 독실한 가톨릭 집안 출신이었다. 그래서 여동생은 ‘아다모’라는 신랑의 성을 따라야 했다. 고민하던 여동생은 차선책으로 이름 중간에 파우저라는 성을 넣었다. 그의 여동생 이름이 ‘벨 파우저 아다모’가 된 배경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결혼을 해도 여성의 성씨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3“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도 성명을 존중하는 문화가 발전한 나라입니다. 아버지를 나타내는 호칭도 얼마나 많습니까? 결혼한 다음에도 아내의 성을 존중해주는 문화도 있습니다. 이름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한국 이름은 인간존중이라는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성장해온 고유한 문화유산입니다. 이런 문화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파우저 교수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에서 10년 가까이 공부했다. 그래서 일본 문화에도 조예가 깊다. 일본은 한국과 달리 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성 다음에 이름을 붙인다. 메이지유신 당시 세계화를 주창했던 지도자들이 정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파우저 교수는 일본과 한국은 문화에 대한 시각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은 자신의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문화 정체성이 확고하게 잡혀 있습니다. 일본에 온 외국인들은 일본 문화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고 교육받습니다. 아주 세세한 면까지 일본식을 따라야 하지요. 문화를 떠받쳐주는 정체성이라는 기둥이 탄탄하기에 작은 변화를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서양 문화를 그대로 따라 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국제적인 기준을 따르는 일과 문화 정체성을 생각 없이 버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성명 표기 방식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한국식으로 이름을 표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지요.”

글·조용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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