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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생쌀을 불려 할머니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아요.”

하루에 한 끼, 한 달 수입 10만원, 열네 살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 가족이라고는 병상에 누운 할머니, 이러한 환경에서도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멈추지 않은 아름다운 청년이 있다. 올해 스물다섯의 늦은 나이로 서남대 의대에 입학한 박진영씨가 그 주인공이다.

진영 씨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생계를 꾸리며 학업을 병행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해 왔다. 그의 새로운 출발이 더욱 빛나고 아름다운 것은 그래서다.

1990년 평범한 집안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태어난 지 100일 정도 지났을 무렵 부모님이 이혼했고 이후부터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다.

아홉 살 때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새엄마와 함께 살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의 꿈만 같던 기억이다. 아버지가 불미스러운 일로 교도소에 간 후 새엄마와도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삼촌과 고모가 있었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그 누구도 나서서 그를 돌볼 수 없었다. 그 순간 유일하게 진영 씨를 키우겠다고 나선 사람이 할머니였다. 할머니와 단둘이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진영 씨는 자연스럽게 가장 아닌 가장이 됐다. 생활비를 보탰던 작은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더 이상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할머니의 노인연금 월 10만원으로 살림을 꾸려야 했다.

“한 달에 10만원으로 생활한다는 건 정말 비참한 일이에요. 하지만 당시 노인정이 있어 점심 한 끼는 해결할 수 있었어요.”

굶는 일은 다반사였고 하루 한 끼 김치에 밥을 먹는 것만도 다행이었다. “고등학교 때 노인정이 공사로 인해 며칠 문을 열지 않았어요. 당연히 할머니와 저는 굶어야 했죠. 하필 그때 할머니가 많이 아팠어요. 먹을 건 없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기도 요금을 못 내 끊겼죠.”

그 시절을 회상하는 진영 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아파트 단지에 있던 불우이웃 쌀통에서 쌀을 구해 근처 은행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그 쌀을 불려서 할머니와 함께 먹었어요.

그 생쌀밥을 먹는데 ‘아, 이러다가 진짜 죽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방과후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한 달 40만원의 수입으로 밥 굶는 일은 면했다.

하지만 고3 수험생이 되자 공부와 생계 중 한 가지는 포기해야했다. 당시 기초수급자 제도조차 몰랐던 그는 결국 공부보다는 생활비를 버는 일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담임선생님이 그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아주대학교에 합격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대학 진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원망하지 않았다. 실패가 아니었고 더욱이 좌절이 아닌 새로운 꿈을 갖기 위해 더욱 강인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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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할머니들 돌보는 정형외과 의사가 될 겁니다”

“당시에 기초수급제도 혜택을 받으며 대학교에 다녔다면 아마 지금보다는 덜 열심히 살았을 거고 비뚤어진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역경이 있었기에 극복하려는 의지를 키웠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그는 기초수급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비교적 보수가 많은 공사장에서 일했다. 딱히 기술이 없는 진영 씨가 공사 현장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건축자재를 옮기거나 폐자재를 정리하는 등의 잡다한 일들. 그러던 중 그는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이 되는 사고를 당한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넘어져 턱을 다치게 된 것. “넘어져서 턱을 다쳤는데 병원비가 200만원인 거예요. 그 당시 수중에 있던 돈을 몽땅 긁어 모아봐야 50만원이었는데, 그때 문득 느꼈어요. ‘아! 이 일을 하면서 평생 할머니를 모시고 살 수는 없겠구나’라고. 그래서 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구체적으로 정형외과 의사의 꿈을 갖게 된 운명적인 사건을 만나게 된다. “노인정에서 매일 보던 할머니 한 분이 3일이 지나도록 안 보이는 거예요. 혼자 사셨던 할머니인데 걱정되어 댁을 찾아가 보니까 한 쪽 어깨가 정말 심각하게 퉁퉁 부어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굶고 누워만 계신 거예요. 병원비가 없어 그냥 계셨다면서요.”

119를 통해 할머니를 병원에 모셔다 드리면서 그는 “할머니들을 위해 정형외과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물론 일하면서 공부하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영 씨는 새벽 5시부터 저녁 5시까지 공사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잠자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 공부했다. 힘들어 포기하고픈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옆에 있는 할머니를 보면서 마음을 다시 잡았다.

처음 하루에 30분씩 공부하기 시작해 일주일 간격으로 공부시간을 30분씩 늘려 나갔다. 학원을 다닐 수 없는 처지였기에 EBS 방송과 교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세 시간만 자는 강행군을 펼쳤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공부했던 그는 결국 올해 서남대 의대에 합격해 꿈의 첫 단추를 끼웠다.

진영 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의대는커녕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저 자신을 통해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며 “가난하게 태어난 건 죄가 아니에요. 하지만 가난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죄인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죠. 하늘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고 믿어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꿈과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어요.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진영 씨는 마지막으로 “치과 전문 버스를 운행하며 의료 사각지대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치과의사 주지훈 씨가 롤모델”이라며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신혜린(전라일보 기자)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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