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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VP 서건창 “나를 키운 건 절박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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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열린 2014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 시상식은 넥센 잔치였다. 서건창(25), 박병호(28), 강정호(27), 앤디 밴헤켄(35) 등 무려 4명이 MVP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그중 타격(타율 0.370)·최다 안타(201개)·득점(135점) 등 3개 부문 타이틀을 거머쥔 서건창이 99표 중 77표를 얻어 MVP 영예를 안았다. 2012년 신인왕 출신의 그가 한국 프로야구사상 두번째로 류현진(27·LA 다저스, 2006년 동시 수상)에 이어 신인왕과 MVP를 차지하는 순간이었다. 인간 승리의 주역으로 야구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이었다.

홀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 프로행 선택

서건창의 은사인 김선섭 광주일고 감독은 “수상 다음날인 11월 19일에도 울먹이며 감사인사를 했다. 광주일고에서 14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인성으로만 따져도 (서)건창이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라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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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창은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신고선수(연습생)’였다. 고교시절 김선빈(화순고·KIA)·노진혁(동성고·NC)과 더불어 호남 내야수 삼총사로 불렸지만, 정작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돈을 만질 수 있겠다는 기대감, 홀어머니에게 효도하겠다는 광주일고 3학년생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LG 신고선수 테스트. 정식선수가 아닌, 누군가에게 발전 가능성을 보여야 진짜 계약서를 쓸 수 있는 ‘반쪽짜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2008년 어렵게 잡은 1군 출전 기회에서 허무하게 삼진을 당했다. 단 한 번의 타석에서 방망이조차 휘두르지 못하고 떨었다. 결과는 방출. LG에는 서건창보다 고교시절 성적이 빼어난 유망주들이 수두룩했다.

현역 군복무는 당연했다. 상무·경찰청 어느 곳도 신고선수를 받아줄 리 없었다. 그래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2011년 말 다시 넥센에서 테스트를 받아 두번째 신고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넥센 타격 코치였던 박흥식 KIA 코치는 “눈빛이 살아 있었다. 유일하게 테스트를 통과한 선수가 바로 서건창”이라고 회고했다.

111번. 서건창이 넥센에서 처음 받은 등번호다. 유니폼 뒤에 세자릿수 숫자가 적혀 있다는 건 밥 먹을 때도 눈치를 보는 신고선수 신세라는 의미다. 그러던 중 2012시즌 개막과 동시에 주전 내야수 김민성이 부상을 당하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성실한 자세로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2년 4월 7일 두산과의 시즌 개막전. 서건창의 등번호는 어느새 14번으로 바뀌어 있었다. 9번 타자 2루수로 선발출전했고 0-1로 뒤진 5회초 2타점 역전 결승타를 터뜨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후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 훈련을 통해 단단해진 수비를 선보이며 넥센 주전 2루수로 자리 잡은 그는 그해 ‘중고신인왕’에 등극했다. ‘연습생 신화의 원조’ 장종훈, 그 다음이 서건창이었다.

“팬들 흥분시키는 게임 메이커 될 터”

서건창은 지난해 오른 새끼발가락 부상으로 만족할 만한 성적(타율 0.266리, 18타점, 53득점, 26도루)을 올리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2년차 징크스라는 달갑지 않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꼭 맞는 ‘피노키오 타격폼’을 장착하며 리그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종범(196안타·1994년 해태)·이병규(192안타·1999년 LG)도 오르지 못한 사상 첫 200안타 고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128경기만 치르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경기당 1.57개의 안타를 생산하며 만든 기록이라 가치가 더 크다. 서건창의 경기당 1.57안타를 메이저리그 경기 수(162경기)로 환산하면 253안타까지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2004년 스즈키 이치로가 세운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 안타 기록 262개(평균 1.63개)와 큰 차이가 없는 셈이다.

200안타는 144경기를 치르는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5명이 총 6차례 달성한 게 전부다. 1994년 이치로(210안타)가 처음 고지를 밟은 뒤 아오키 노리치카(2005·2010년), 알렉스 라미레스(2007년), 맷 머튼, 니시오카 쓰요시(이상 2010년) 등이 성공했다. 그중 최다는 머튼의 214개다. 하지만 경기당 평균은 1.49개로 서건창에 못 미친다.

이 같은 이유로 굳이 신고선수 출신이 아니더라도 “서건창 선배를 닮고 싶다”고 말하는 선수들이 늘어났다. 두산 외야수 정수빈이 서건창의 타격 자세를 보고 배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수빈은 일찌감치 한국시리즈 주전 외야수로 뛸 만큼 서건창보다 프로에서 이룬 것이 많다. 하지만 “서건창은 나보다 몇십 배는 뛰어난 타자”라는 말이 정수빈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신고선수가 누군가의 롤모델로 우뚝 선 드라마 같은 이야기다.

서건창은 “예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야구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 야구를 했다. 실패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올 시즌을 치렀다”고 했다. 그는 또 “백척간두(百尺竿頭) 진일보라는 말처럼 한단계 더 나아가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다. 나 자신을 속이지 않고 늘 최선을 다해 팬들을 흥분시키는 게임 메이커가 되겠다”며 내년 시즌 한 단계 도약을 약속했다.

글·함태수(한국일보 기자) 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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