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전주화산체육관 빙상장. 오후 5시가 되자 자기 키보다 훌쩍 큰 아이스하키 채를 든 초등학생들이 하나 둘씩 얼음 위를 가르기 시작한다. 한 시간이 넘는 연습에도 지치기는커녕 “선생님, 조금만 더요!”를 외친다. 주장인 골리(골키퍼)가 “이제 그만, 장비 정리하자”고 소리치자 그제야 하나둘씩 얼음판에서 내려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열린 ‘제1회 국민생활체육회장배 전국 유소년 아이스하키 대회’ 우승팀인 전북 맥파이스 클럽의 선수들이다.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남학생 7명, 여학생 4명으로 구성된 국내 몇 안 되는 ‘혼성 아이스하키팀’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용동초등학교의 학생 수는 38명. 한 학급의 학생 수가 아니라 전교생 숫자다. 4년 전까지만 해도 전교생 수는 50명이었다. 하지만 점점 학급 수가 줄고 학생도 줄면서 폐교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스하키 전국대회 우승팀의 주축 멤버가 다니고 있는 스‘ 포츠 명문 초등학교’로 명성이 높다. 적은 학생 수에도 좋은 시설과 내실 있는 교육으로 전북교육청이 선정한 ‘작고 아름다운 학교’로 뽑히며 주변 지역 예비 학부모들이 좋아하는 초등학교로까지 발전했다.
이렇게 조그만 시골 학교인 용동초등학교가 스포츠 명문 타이틀을 얻게 된 배경에는 3년 전 부임한 송원용(40) 교사의 역할이 컸다. 직전 근무지인 전주 중산초등학교에서 전북 유일의 유소년 아이스하키부를 이끌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용동초등학교로 발령 나고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 사실 충격이었습니다. 40학급이 넘는 규모의 학교에서 한 학년에 한 학급도 구성하기 힘든 작은 학교로 왔기 때문이었죠. 그보다 놀랐던 건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송 교사는 중산초등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용동초교에도 아이스하키부를 만들어 아이들이 한 가지 특기 스포츠를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공부만 하고 학교생활을 지루해하던 학생들이 운동을 통해 점차 활기차게 바뀌는 모습을 직접 경험했기에 어렵사리 학교장의 승낙을 받아 전북교육청에 지원을 부탁했다. 김제에 위치해 있지만 빙상장이 있는 전주화산체육관과는 차로 20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도 큰 이점이었다. 하지만 교육청에선 ‘지원이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많은 예산을 들여 창단했다가 행여 폐교되거나 신입생이 부족해 선수 수급이 어려워지면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교육청의 권고에도 송 교사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전북은 빙상 스포츠의 메카입니다. 1997년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마치고 인프라도 어느 정도 갖추게 됐고, 시설도 태릉 못지않게 마련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인프라를 한번 이용해 봐야겠다는 마음에 전북 아이스하키협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죠.”
전북 아이스하키협회는 송원용 교사의 계획을 듣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적극 지지하기로 약속했다. 그동안 학원 스포츠는 엘리트 스포츠, 성과주의 스포츠라 불릴 정도로 성적만 중시했는데 그런 것이 아닌 아이들의 건강을 위한 즐기는 스포츠 활성화라는 목표에 동의한 것이다.
이렇게 협회의 지원을 받아 2012년 3월 ‘전북 맥파이스’란 이름으로 창단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용동초등학교 아이스하키부가 아닌 스포츠 클럽으로 창단한 이유는 아직 부족한 선수 탓에 졸업생은 물론 김제 다른 학교 학생들의 참여도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단 이후에도 전문 코치가 없어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했다. 송 교사가 중산초 근무 시절 알던 강사들에게 부탁해 가끔씩 훈련받은 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을 접한 전북 아이스하키협회는 얼마 전까지 선수 생활을 하던 임병현 코치에게 강습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임 코치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아이스하키를 즐길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전문 기술이나 공격 전술보다는 기초 기술부터 차근차근 익히게 도왔다.
그 뒤 몇 달간 이어진 훈련에 한 명의 선수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 덕분에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지난해 12월 전국대회에서 전북지역 팀으로는 첫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학부모들의 지원도 늘어났고, 클럽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학생도 많아졌다. 송 교사는 “이제는 국내 유일한 유소년 여성아이스하키팀도 한번 도전해 볼까 합니다”라고 계획을 밝혔다.

“스포츠 통해 아이들에게 건강 선물”
송 교사는 세미나나 지역 교사 모임에 참석하면 다른 교육자들에게 수많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비인기 스포츠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요?” “시골에서 공 하나 있으면 할 수 있는 축구를 하지 왜 장비도 많이 필요하고 장소도 구애받는 종목을 하죠?” 이런 질문에 일일이 대답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다만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송 교사는 한 마디 말로 답을 대신한다고 말했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길이 펼쳐져 있죠. 교육자는 가치관이 각자 다릅니다. 공부를 중요시할 수도 있고, 인성교육에 집중할 수도 있죠. 저는 스포츠를 통해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앉아서 책만 보는 아이보다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자신 있어하는 운동 종목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용기 있는 교사는 잘 가르치고 정보를 잘 전달하는 것보다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송원용 교사. 아이들이 공부와 숙제에 지쳐 힘들고 짜증 부릴 때,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시간이 체육활동에 할애됐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글과 사진·김상호 기자 2014.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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