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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영역’ 편견 딛고 ‘유리천장’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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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마리 퀴리는 최초의 프랑스 소르본대(현재 파리4대학) 여교수였다. 그러나 노벨상을 두 차례나 받은 마리 퀴리 교수도 파리 과학아카데미의 정회원이 되지는 못했다. 여성이라는 한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과학기술계는 마리 퀴리가 살았던 당시 프랑스와 사정이 현저히 다르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발표한 ‘2011 여성과학기술인력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과학기술 연구개발 인력은 2010년 기준 3만6,360명이다. 전체 21만685명의 17.3퍼센트에 해당하는 인력이다. 과학기술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이 거의 없으리라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비율이다.

섬세하고 꼼꼼한 여성만의 장점이 과학기술분야에서도 빛을 발한다는 증거다. 이들 한국 과학계에서 활약하는 여성 과학자들 중 일부는 남성에 비해 과학기술적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편견을 깨고 리더로서 역할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김빛내리 교수 한 우물 파는 열정으로 노벨상 가능성 열어

과학계의 우먼파워는 세계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2002년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 RNA(세포에서 유전자 기능을 조절하는 물질) 생성 과정을 밝혀내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과학자로 떠올랐다.

김 교수도 학계의 주목을 받기 전까지는 재계약을 걱정하던 무명의 학자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는 1992년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영국 옥스퍼드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힘든 연구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는 뚝심으로 끈질기게 RNA 연구에 매진해 지금은 이 분야에서 국내외적으로 주목받는 학자로 우뚝 섰다.

그는 이후에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마이크로RNA 대표과학자로 거듭났다. 2002년 마이크로RNA 연구를 시작한 이래 학술지 <네이처(Nature>와 <셀(Cell)>에 수 편의 논문을 실었으며, 2010년에는 <셀> 편집위원으로 선임됐다. <셀>은 <네이처> <사이언스>와 함께 세계 3대 과학학술지로 꼽힌다.

그의 연구 열정은 최근까지도 전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끌었다. 마이크로RNA가 생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RNA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효소들을 발견한 업적도 그가 해낸 것이다. 이 연구 결과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가장 근접한 과학자로 학계에서는 평가받고 있다.

 

정희선 원장 꼼꼼함과 세심함으로 마약검사법 개발

왠지 남성들의 세계로 여겨지는 과학수사분야에서 마약검사법 표본을 만든 리더도 여성이다.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정 전 원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시절 약독물과장·마약분석과장·법과학부장을 거쳐 200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역사상 첫 여성 원장에 올랐다.

정 전 원장은 국내 최초로 소변에서 필로폰 성분을 검출하는 시험법과 모근을 이용한 필로폰 검사법을 탄생시켰다. 약학대 시절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오수창 소장의 강연을 듣고 과학수사에 매력을 느낀 그는 졸업 후 197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들어갔다. 주변에서는 여성에게는 험난한 길이라고 말렸지만, 그는 뚝심 있게 30여 년간 연구 끝에 마약 감정 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세심함으로 마약검사법과 가이드 라인을 만들었다. 마약범죄가 성행하기 전인 1980년대 초부터 동물실험을 통한 마약검사법 개발에 매진했다. 이후 증가세를 보인 마약 관련 범죄에서 마약 검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7년에는 과학기술부가 제정한 제7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을 수상했으며,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국제법독성학회장에 뽑혔다.

그는 원장 재임기간 포용의 리더십을 선보였다. 직원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배려했다는 것이 당시 근무자들의 중론이다. 상명하복 관계가 아닌 사람 대 사람으로 직원들을 대해 인기가 높았다. 그 역시 승진에서 밀리는 ‘유리천장’ 을 경험했고, 그때마다 자신을 붙잡아준 직장 동료들을 통해 리더로서 필요한 진심 어린 인간관계를 배웠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그는 3년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 임기를 마치고 지난해 퇴임했다. 그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입성했을 당시 3명에 불과했던 여직원은 현재 43명으로 크게 늘었다.

그의 원장 재임기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원’으로 승격했다. 향후 후배 과학자 육성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고 밝힌 그는 아시아 과학수사 수준을 높이는 비전 실현을 다음 과제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이소연 박사 강인한 체력으로 우주 날아가 과학 비밀 풀어

국내에서 손꼽히는 과학자 중 이소연 박사(한국항공우주연구원)가 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이 박사는 2008년 4월 우주비행 임무를 무사히 수행한 이후 지난해 7월까지 우주과학분야에서 연구에 매진했다. 이 박사는 광주과학고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박사과정을 밟던 중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타이틀을 놓고 당시 삼성종합기술원의 고산씨와 경쟁을 벌였다. 공교롭게도 성 대결이어서 더 언론의 화제와 주목을 받았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이 박사가 국내 최초 우주인이자 아시아 두 번째 여성 우주인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 박사는 9박10일 동안 국제 우주정거장에 머무르며 과학실험을 했다. 우주에서 초파리들의 모습을 관찰하고 무중력 상태에서 얼굴의 변화를 알아보는 실험을 실시했다. 지상에서 실험이 불가능했던 연구과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면서 한국 과학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대중강연 등 외부활동을 하며 우주생활 경험을 대중과 공유하는 데 앞장섰다.

그의 우주인으로서 행보는 우주과학기술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최근 나로호 발사 성공에 “자랑스럽고 미안하다”는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 박사가 우주비행 전에 “한국 항공우주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포부가 실현된 셈이다.

글·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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