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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 주위에 줄 도움 먼저 고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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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 되겠다는 희망 품고 치열하게 노력
원정희 미국 CBS PD

헤더 원(40)씨는 잘나가는 동포 여성이다.

<뉴스위크> <타임>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자를 거쳐 미국 3대 방송사 가운데 하나인 CBS에서 메인 뉴스 프로듀서로 일한다. 동양인 여성이라는 불리함을 이겨내고 글로벌 저널리스트로 당당하게 자리잡았다.

그는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미국 이름 헤더 원, 한국 이름이자 세번째 이름 원정희, 그리고 첫번째 이름 ‘원주애’다. 첫 이름은 그의 출생과 관련이 있다. 원씨는 태어난 직후 원주의 한 가정집 앞에서 발견됐다. 말 그대로 ‘원주에서 발견한 아이’라는 의미다. 보육원에 맡겨진 원씨는 9개월 만에 미국으로 입양되며 헤더 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미국사회에서 동양인 여성으로서 한계에 부닥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TV에 나오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치열한 노력을 통해 결국 꿈을 성취해냈다.

그의 세번째 이름 원정희는 2010년 생겼다. 입양 이후 첫 방한이었는데 내친김에 한국 이름을 만들었다. 실제 성씨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는 ‘원’이라는 성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의 고향일 가능성이 높은 원주와, 그곳에 살았을지 모르는 부모를 연결해주는 마지막 고리이기 때문이다.

2012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인차세대대회’에서 원씨를 만난 당시 김황식 국무총리는 “당신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이라며 “나는 당신이 자랑스럽다”고 격려했다.

원씨는 치열한 노력으로 언론인의 꿈을 이뤘듯, 언젠가는 고향과 부모를 찾게 될 것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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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한 학업 거쳐 90 대 1 경쟁률 뚫어
김윤정 브라질 자리노시 검사장

김윤정(33)씨는 브라질 이민 1.5세다. 김씨가 열 살 때 가족이 브라질로 이민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20년 만인 지난 2009년 상파울루주 인구 2만4,000명의 소도시 자리노시의 검사장 자리에 올랐다. 한국계 이민자로서는 대단한 성공이다.

김씨는 청소년 시절 일찌감치 검사의 꿈을 키웠다. 2002년 상파울루카톨릭대 법학대학원에 다니며 착실히 검사시험을 준비했다. 결국 2003년 9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검사에 임용됐다.

김씨는 이민 후 2011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젊은 글로벌 코리안 리더를 위해 주최한 포럼에서 강연하기 위해서였다. 강연을 통해 김씨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리더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공하겠다는 목적보다 자신이 주위에 줄 수 있는 도움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행사를 마친 다음 그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에 다시 돌아와 이곳 저곳을 둘러보니 고국의 발전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면서 “상파울루를 대표하는 검사장이 돼 한국인의 긍지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한국인 국적 포기 않고 변호사 도전
김미사 재일 변호사

김미사(27)씨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법조인이다. 2011년 일본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게이오대에서 법학박사 과정을 밟는 변호사다. 어린 시절 김씨는 언론인을 꿈꿨다. 하지만 대학 입학 직후 아버지를 여의며 생각을 바꿔 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의 아버지 고 김경득씨는 일본 1호 한국 국적 변호사다. 그는 일본 국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사법연수원에 입소할 수 없다는 조항에 맞서 싸운 끝에 일본 내에서 한국 국적을 지닌 첫 변호사가 됐다. 이후 재일동포 국민연금소송, 지문날인거부운동, 일본군위안부 전후 보상 소송 등 재일동포의 인권 및 전후 보상소송을 이끌었다.

딸 미사씨는 판사를 꿈꿨다. 하지만 일본에서 외국 국적으로는 판사가 될 수 없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면 해결되는 문제였지만 김씨는 부모님이 힘겹게 지켜온 한국 국적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박사과정을 마친 다음 계속 학교에 남아 일본의 법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아버지의 투쟁으로 차별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 일본 내에서 소위 일류대에 재일동포 교수는 드물어요. 아이들에게는 어느 직업, 어느 위치에나 한국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한국어 능력을 살려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는 일도 하고 싶고요.”

현재 일본에서는 약 50명의 한국인이 법조계에서 활동한다.

 

교육에는 유익함과 즐거움 함께 있어야
이세나 유니세프 교육담당 컨설턴트

이세나(34)씨는 방콕에 있는 유니세프 동아시아태평양지역사무소의 교육담당 컨설턴트다. 주업무는 아시아 지역에서 각국 정부와 민간기관의 교육수준을 높이는 일이다.

그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한국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이씨는 1989년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했다.

영어를 못해 수업 진도를 따라가질 못해 어린 마음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아이들이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즐겁게 학교에 다니는 모습이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성적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운동이나 예능 등 재능이 있으면 이를 살려주는 모습에 교육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가 미국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좋은 교육은 아이들에게 유익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결국 그를 전문직으로 이끌었다.

이씨는 대학에서 정책분석 및 경영학을 전공한 뒤 2005년 하버드대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프로그램에 선발돼 유니세프 교육담당 컨설턴트로 뽑혀 동남아에서 일해왔다.

그는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들었다”며 “정말 자신이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지원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글·조용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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