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대사님께서 한국에 오신 이후 어느 면에 가장 중점을 두고 활동하셨는지요.
“제가 한국에 온 지 3년이 되지만, 한·남아공 관계는 이보다 훨씬 깊은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남아공은 6·25전쟁 참전국입니다. 1992년 시작된 양국 외교관계는 이제 20년이 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 왔을 당시 세계경제 침체로 양국 모두 큰 타격을 입어 양국 간 무역 증대가 제 활동의 중점 분야였습니다.
그 결과 2010년 이후 양국 간 무역이 연평균 30퍼센트씩 증가했고, 2012년 양국 간 무역량이 역대 최고에 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 3년간 양국 외교관계 역시 많은 발전을 이뤘습니다. 기존 정책 교섭은 정책협의회를 통해 이뤄졌는데, 국장급을 수석대표로 하여 개최되다가 2년 전부터 차관급으로 격상됐습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유일의 G20 회원국이고, 아프리카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성장의 원동력으로 꼽을 수 있는 점은.
“남아공은 귀금속과 원자재가 풍부합니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금과 다이아몬드 생산량을 자랑합니다. 석탄, 철광석, 백금 등의 자원 역시 풍부합니다. 약 120년 전 금과 다이아몬드가 처음 발견됐는데, 이 발견이 남아공 산업화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채광 이외의 다양한 분야로 산업화가 확산됐고, 아프리카 최고 수준과 규모로 산업·경제 발전을 이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남아공 농촌에는 저개발지역이 남아 있는데, ‘새마을운동’에 대한 남아공의 평가는.
“남아공은 여타 공업 국가와 마찬가지로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돼왔고, 소수의 인구만이 지방에 남아 있습니다. 반면 농업은 매우 기계화되었고, 기계화된 남아공 농업은 세계 일류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경제·사회적 양분화가 심해져 이런 기계화 농업과 산업화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인구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의 ‘할 수 있다’ 정신은 소외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마을운동은 마을 공동시설을 건설하는 것과 소득증대를 강조하는데, 이런 부분이 지방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새마을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남아공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고, 앞으로 더 많은 인원이 방문할 것입니다.”
한국 기업에 남아공은 어떤 투자 매력이 있을까요.
“남아공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많은 원자재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크롬과 백금을 많이 수출하는데, 만약 한국 기업이 수출되기 전 원자재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협력한다면 남아공 입장에선 일자리 창출, 한국 기업의 입장에서는 수 입 비용 절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현재 남아공 정부는 인프라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도로·철도 건설이 늘고,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화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며, 신재생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 분야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모두 한국 기업이 탁월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아공은 두터운 중산층이 있습니다. 자동차나 TV, 냉장고 등 백색 가전, 휴대폰과 같이 중산층의 관심이 많은 제품 분야에 더욱 적극적인 남아공 진출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남아공의 ‘자유의 날(4월 27일)’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긴 식민지 시대를 겪었고, 1994년 4월 27일에야 첫 민주주의 선거를 치렀습니다. 독립과 자유를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해오면서 많은 이들이 고난을 겪었습니다. 이 억압의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남아공에서 자유는 모두에게 소중한 가치이고, 국경일을 ‘자유의 날’이라 칭합니다.”
다문화 사회 남아공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요.
“남아공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는 국가입니다. 아프리카 토착민의 비율이 70퍼센트를 약간 웃돌고, 유럽 혈통이 7퍼센트, 인도 혈통이 3.5~4퍼센트를 이루고 있습니다. 인구의 약 7퍼센트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인입니다. ‘무(無)인종차별, 무(無)성차별, 민주주의’가 남아공 헌법의 정신인데, 다문화는 공존할 수 있다는 신념이 바로 남아공 헌법의 근간입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남아공의 방법에서 배울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각 나라마다 사회적 상황이 다르고 거기에 맞는 체계를 갖춰야 하죠.”
남아공에 6·25전쟁 참전 의미는.
“남아공은 60년 전 6·25전쟁에 참전하면서 한국에 처음 왔습니다. 6·25전쟁 당시 약 50명의 남아공 군인이 목숨을 잃었죠. 하지만 참전용사들 모두 오늘날 선진국으로 발전한 한국의 모습이 대단하고,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을 잊지 않고 매년 한국으로 초청해 주시는 데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참전용사의 손자가 장학금을 받아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을 잊지 않는 한국의 도덕적인 면을 잘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남아공 사람들도 한국에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대감이 양국관계의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박경아 기자 / 사진·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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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