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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울시 송파구 거여동에 사는 강능환(92) 할아버지는 1951년 1·4후퇴 직후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다. 벌써 62년 전의 일이다. 당시 북에는 여든을 넘긴 연로한 부모님과 두 명의 손위 누이, 그리고 큰누이의 아들이 남아 있었다.

지난 9월 9일 자택 인근에서 만난 강 할아버지는 “남겨놓고 온 가족들의 생사는 불투명하지만, 죽기 전에 단 한번이라도 고향 땅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강 할아버지는 황해도 신천군 초리면에서 3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이 고향 일대의 산과 논 등 많은 땅을 소유하고 있어 유복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강 할아버지는 서울의 경성전기공업고등학교를 1년 여 다니다 일본 유학을 떠났다.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일을 하던 강 할아버지는 1949년 초리면의 바로 옆 동네인 신천군 문무면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는다. 하지만 그 이듬해 바로 6·25전쟁이 터졌다. 강 할아버지의 가족은 전쟁이 터지자마자 인민군에게 농지와 집 등 모든 재산을 빼앗겼다.

강 할아버지는 “1·4후퇴 후 인민군이 들이닥치자 북에 계속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며 “시댁이 북에 있는 두 누님을 어쩔 수 없이 남겨놓고, 연로하신 부모님, 큰형과 함께 남쪽을 향해 피난길에 나섰다”고 말했다. 둘째 형은 1·4후퇴 전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미리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였다.

“아마 38선 인근까지 갔을 거예요. 이틀 밤을 잠도 자지 않고 걸었으니까…. 나랑 형은 젊으니까 인민군 눈에 띄어 끌려갈까봐 계속 이리저리 도망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부모님을 해변가 어디에 숨어 있도록 하고, 형과 나는 백령도 앞의 작은 섬으로 사흘만 피신해 있다 온다는 게 부모님께 영영 가지 못한 겁니다.”

구순이 넘은 나이의 강 할아버지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강 할아버지는 남하 직후 인천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며 큰형과 함께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몇 년 후 두 형제는 서울에 먼저 내려와 자리를 잡은 둘째와 연락이 닿아 서울로 상경, 3형제가 모두 서울에 정착할 수 있었다.

강 할아버지는 미군 부대 등에서 일하며 자리를 잡은 뒤 결혼해 슬하에 아들 둘을 둔 채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살 수 있었다.

지금은 큰아들의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같이 남쪽으로 온 큰형은 7년 전에, 작은 형은 3년 전에 작고해 지금은 강 할아버지 혼자만이 망향의 설움을 외로이 달래고 있다. 강 할아버지는 “북녘땅에 두고 온 가족들을 단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강 할아버지가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큰누나의 아들이다. 이 조카는 6·25전쟁 때 인민군 포로로 잡혀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었는데, 당시 남북 휴전 후 포로 교환을 통해 부모가 있는 북으로 되돌아갔다.

강 할아버지는 “부모님과 누님 두 분의 생사는 몰라도 그때 북으로 돌아간 조카는 살아 있을 수 있다”면서 “이번이 내 생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조카의 생사가 확인돼 꼭 북녘 땅에 가고 싶다”며 간절한 희망을 내비쳤다.

글·박미숙 기자/캐리커처·박상철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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