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 신경과학연구단의 허여울(31) 박사는 올해 2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를 졸업한 젊은 과학자다. 박사후 과정을 밟으며 이제 막 과학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딘 그에게 최근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해양생물연구소(MBL)가 주관하는 ‘그라스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선발된 것이다. MBL은 5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인 비영리 사립연구소다.
MBL 그라스 펠로우십은 신경과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소수의 젊은 연구자들을 글로벌 석학들과 연결해 네트워크를 구축토록 하고 실험실을 직접 운영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수한 인력에게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체류비와 연구 비용 일체를 지원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지원자들 가운데 매년 10명 안팎의 연구자만 선발하는 이 프로그램에 국내 석·박사 출신이 선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허 박사는 “지난해 MBL 교류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그라스펠로우십 프로그램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며 “직접 실험실을 구성해 주도적으로 연구할 수 있고, 세계적인 연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3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수행하기에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제시한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허 박사는 박사학위 과정 중 관심을 가진 통증 관련 연구를 주제로 제안서를 작성했다. 그는 오는 5월부터 8월까지 MBL에서 대뇌 피질 내에 있는 다양한 신경세포들 중 통증 감소와 관련된 세포의 종류를 밝히는 일을 하게 된다.
허 박사는 “세포들이 특정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보고, 특정 자극이 통증의 감소를 가져오는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고교 졸업 무렵엔 이공계 기피현상에 진로 고민도”
허 박사는 국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 오하이오주 그린넬대학에 진학해 생화학을 전공했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을 하게 되는지 그 원리가 궁금해 관련 수업을 수강한 것을 계기로 신경과학 분야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생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화학 공부가 필수라는 말에 기초과학 분야인 생화학을 전공으로 택했다”며 “반면 신경과학은 수학·물리·생물·기계 등 학생들의 출신 전공이 저마다 다를 정도로 광범위한 융합적인 영역이라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학부를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석·박사 통합과정에 진학했다. 주변 유학생들이 주로 해외 석·박사 과정을 선호하는 것과 달리 국내 대학을 선택한 것이다. 허 박사는 “UST 신경과학 전공의 경우 커리큘럼과 강의의 질이 해외 석·박사 통합과정과 견줄 만하도록 짜임새 있게 짜여져 있다”며 “여러 연구원들로 이루어져 있는 학교인 만큼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교류를 장려하여 타 전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요즘에 화두가 되는 융합연구를 진행하기에 유리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국가 연구소인 만큼 최신 연구장비가 잘 갖춰져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다면 ‘02학번’이었을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해 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고 말했다. 어려운 연구 환경과 과학자에 대한 인식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아직까지 의사나 다른 전문직에 비해 과학자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은 게 국내 현실”이라며 “기초학문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려운 현실과 달리 성별을 떠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에 과학만큼 객관적인 분야도 없을 것이라는 게 허 박사의 생각이다.
그는 “과학의 긍정적인 면 중 하나가 세계 어느 나라 사람과도 과학이라는 관심 분야 하나로 교류하고 공동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국적이나 나이, 성별로 차별당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꼼꼼한 일 처리 능력이 과학에 있어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허 박사는 MBL 파견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책임자급 연구원이 되기 전에 스스로 계획을 세워 연구할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이번 펠로우십 경험과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앞으로도 계속 미지의 세계인 신경과학 분야에서 인류에 도움이되는 연구 성과를 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 여름 세계적인 연구소에서 연구에 매진할 생각에 들뜬 그는 ‘여성’이나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제하더라도 충분히 빛나는 과학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글·허정연 / 사진·지미연 기자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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