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뛰었다. 그것도 42.195킬로미터를 뛰는 마라톤대회였다. 시각장애인 한창수 씨가 시력을 잃은지 2년 만이었다. 처음에는 걷는 것도 힘들었고 뛰는 건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한 씨는 마라톤에 도전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한 씨의 옆에는 그와 함께 뛰는 ‘가이드러너’가 있었다.
한 씨의 팔과 가이드러너의 손목은 끈으로 연결돼 있었다. 한 씨가 방향을 잘못 잡거나 다른 주자들과 부딪치려 할 때마다 가이드러너가 올바르게 방향을 잡아줬다. 2006년 11월 한 씨는 마침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한 씨는 “직장을 다니다 갑작스레 실명한 후 어떻게 살지 막막했는데, 마라톤을 완주한 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한 씨의 눈이 된 김순임(59) 씨는 가이드러너 중에서도 ‘대모’로 통한다. 시각장애인들과 완주한 마라톤 횟수만 64회, 거리로 따지면 2,700킬로미터가 넘는다. 2008년부터 가이드러너를 시작한 지 7년째,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도 무색해진다.
김 씨는 매주 화·토요일마다 서울 남산 산책로 6킬로미터를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뛴다. 2011년부터 가이드러너 모임인 ‘해피레그(Happy leg)’의 회장도 맡았다. 3월 25일 오전 10시 남산 목멱산방 앞에서 만난 김 씨는 이미 시각장애인들과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고 있었다. “오늘은 팔각정까지 뛰실 분 없죠? 두 바퀴만 뛰어볼게요.”
7년 전까지만 해도 김 씨는 가이드러너에 별 관심이 없었다.
혼자서 뛸 때는 ‘마라톤대회 상금 사냥꾼’이라 불릴 만큼 마라톤 실력이 좋았다. 풀코스 최고 기록은 2002년에 세운 3시간 20분.
2000년 마흔 다섯 살의 나이로 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이후 전성기 때는 대회에 참가하기만 하면 상위 순위로 입상할 만큼 잘 뛰었다. 풀코스 대회는 물론이고 5킬로미터, 10킬로미터, 하프코스등의 대회에 매주 참가할 만큼 마라톤에 대한 열정도 강하다.
100킬로미터 이상 뛰는 울트라 마라톤대회도 여성 최초로 100회나 완주했다.
함께 뛰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8년 한 시각장애인을 만난 후부터였다. “동아 마라톤대회 때였어요. 부산에서 올라온 시각장애인 분이었는데, 함께 뛸 사람이 없다고 지인이 안타까워하더군요. 동아 마라톤은 메이저 대회라 저마다 각자 기록을 세우는 것에만 관심이 많았죠. 사실 저도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맡게 돼 그때 처음 가이드러너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떠밀리다시피 시작한 가이드러너 역할은 상상 외로 즐거웠다.
함께 뛰는 것은 처음이라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는 사이 힘든 것도 잊었다. “결혼해서 직장생활도 잘하다가 갑자기 시력을 잃은 분이었어요.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마라톤이 시력을 잃은 뒤 얼마나 큰 희망인지 함께 뛰면서 이야기를 들려줬죠. 큰 감명을 받았어요.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저 도와주고 싶은 마음만 들었죠.”

“기록보다 뛰는 것 자체를 즐길 수 있게 돼 행복”
가이드러너로 처음 뛴 4시간이 지난 후 김 씨의 마라톤은 확연히 달라졌다. 기록에 집착하기보다는 달리는 것을 좀 더 즐기게 됐다. 매주 가이드러너로 시각장애인들의 훈련을 돕고 대회에도 함께 꾸준히 참가한다.
100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즐기게 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제가 처음 울트라 마라톤을 뛰고 나서 두 번 뛰면 성을 갈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뛸수록 기록에만 신경 쓰는 일반 마라톤보다 매력적이더군요. 밤에 뛰면서 별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뛰는 일 자체를 즐기게 된 거죠.”
가이드러너를 하며 가장 뿌듯할 때는 시각장애인들이 마라톤을 완주할 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시각장애인 송병석 씨다. “처음에 마라톤을 하겠다고 왔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사회성이 조금 결여된 친구였어요. 통제도 잘 안 되고, 어떻게 뛰라고 이야기해도 전혀 말을 듣지 않았죠.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서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그랬어요. 엄청 속 많이 썩였죠(웃음).”
마라톤에 대한 남다른 열정 하나만 보고 김 씨는 그를 전담해 훈련시키기로 했다. 지난해 송 씨는 마침내 마라톤을 완주하는데 성공했다. 그때 김 씨가 느낀 뿌듯함은 남달랐다. 송 씨의 삶도 2년 동안 뛴 마라톤 덕분에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학교를 다니면서 그만의 꿈을 키우는 중이다. “안 좋은 길로 빠질 수도 있었는데 많이 좋아져서 대견하고 뿌듯합니다. 제가 나이가 많아 편해서 그런지 개인적인 상담도 많이 하고 친해졌어요.”
‘철인’처럼 보이지만 김 씨 또한 사람인지라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붙잡아 주는 힘도 함께 뛰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이다. 호흡을 맞춘 지 오래된 시각장애인들은 김 씨의 컨디션이 어떤지 조금만 뛰어도 척척 알아차린다. “힘들어 보이니까 천천히 가자 말해 주고, 조금만 더 힘내서 뛰자고 할 때 그만 뛰고 싶어도 힘이 납니다. 함께 뛰는 매력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가이드러너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보람이 뭐냐고 묻자 김 씨는 “뛰고 싶은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될 수 있고 아무 사고 없이 뛸 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겸연쩍게 마지막 대답을 한 뒤 김 씨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남산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몸은 둘이었지만, 한 사람이 뛰는 것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글·남형도 기자 201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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