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참담했지. 정말 참담했어요.”
신응수(71) 대목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2008년 2월 10일은 그에게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날이다. 그날 저녁 무렵 국보 1호 숭례문이 불길에 휩싸였다. 놀란 가슴에 한달음에 현장으로 달려간 그의 눈앞에서 숭례문의 기왓장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는 우두커니 서서 밤새 숭례문을 지켜보았다.
그에게 숭례문은 각별한 공간이다. 목수로서 전통문화유산 보수작업에 눈을 뜨게 해준 곳이기 때문이다. 1963년 스무 살이던 신응수 대목장은 숭례문 중수 공사에 참여했다.
당시 숭례문은 6·25전쟁을 겪으며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보 1호를 보수하라고 지시했고, 그렇게 숭례문 중수 공사가 시작됐다. 어깨너머로 목수 일을 배우던 청년은 스승인 이광규 선생을 따라 역사적인 공사의 일원이 됐다. 당시 공사의 도편수는 조원재 선생이, 부편수는 조 선생의 제자인 이광규 선생이 맡았다.
평생을 외길 목수 인생을 걸어온 그지만 지나온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신응수 대목장은 “고된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스스로 놀라울 때가 있다”며 “어린 친구들에게 내가 했던 일을 시키라면 안쓰러워서 못 시킬 것 같다”고 말했다.
고된 일 속에서 그를 지킨 건 자긍심이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자신의 이름 앞에 떳떳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를 이끈 신조다. 특히 문화유산을 복원하는 일에 있어서 그의 이러한 신념은 확고하다.
복구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지난 4월 24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사무실에서 신응수 대목장을 만났다.

50년 전 숭례문 중수 공사에 참여하고 이번에 또다시 복구 공사에 참여하게 돼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1963년 준공할 때 당시 모습을 똑같이 재현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임했다.”
이번 복구 과정에서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어떤 건물이든 목재 공사가 가장 중요하다. 목재 공사에 따라 기와를 얹고 단청도 만든다.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은 없다.
다만 50년 넘게 이 일에 종사했으니 ‘어떻게 하면 오래갈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한 것 같다. 정성을 다했다. 우리 전통 목조건축은 ‘정성’ 그 자체다. 대들보에서부터 지붕, 추녀 등을 잇는 모든 부속물들을 못 하나 없이 일일이 깎고 끼워 맞췄다. 목재 하나를 자를 때에도 전기톱이 아닌 진짜 도끼를 가져다가 잘랐다.”
어떤 목재가 사용됐나?
“전부 우리나라 소나무를 사용했다. 강원도 삼척에서 베어온 100년 된 소나무 10본에 국민들이 기증한 나무도 사용했다. 강릉에 보유하고 있는 목재소에서 나무를 주로 공수해왔다.”
전통 건축물을 복원할 때 목재 선택 기준이 있나?
“영동지역에서 나는 소나무가 좋다. 우리 건축물, 특히 궁궐 건축물의 힘을 받아내기 위해서는 적송이 으뜸이다. 200년에서 300년은 자라야 훌륭한 재목이 되기 때문에 구하기 어렵다. 국내에서 적송이 나는 곳은 강원도 양양에서 경북 울진에 이르는 백두대간 줄기뿐이다. 이곳에서 나는 적송이 곧고 수명도 길다.”
전통 건축물을 복원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고증과 실측, 그리고 경험이다. 재료도, 기법도 마찬가지다. 당시 기록된 방법에 따라 복원을 해야지 현재의 기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기본을 손상할 수 있다.”
대목장이 생각하는 장인정신은 무엇인가?
“자기 이름 석 자에 사명감을 갖는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장인은 특히 그렇다. 세월이 가도 내 이름 석 자가 사라지지 않고 후대에 새겨질 수 있도록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 항상 ‘내 집을 짓는다’는 자세로 임한다. 이번 숭례문에는 ‘도편수 신응수’라는 이름이 새겨지겠지만, 여기에는 수많은 장인들이 참여했다.”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있어 우리나라는 국민적 관심이 아직 많이 부족한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숭례문이 불에 타면서 그나마 관심이 모아졌지만 아직 멀었다. 앞으로 복원될 문화유산들이 많은데 지금 같은 관심으로는 부족하다. 문화유산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자 관광자원이고 보물 아닌가? ‘문화융성’이라는 말이 많이 언급되는데, 문화유산을 아끼고 보존하려는 자세가 문화융성을 이루는 기초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계획한 건 많은데 잘 안 된다. 먼저 시일 내에 자료전시관을 만들고 싶다. 경주의 황룡사를 복원하는 것도 꿈이다. 황룡사를 복원해 우리나라가 한때 문화강국이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이번 숭례문 복구를 맞아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국민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졌으면 한다. 내가 숭례문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할 때 애정을 가지고 꾸중도 하고 지적도 할 수 있는 법이다. 모든 문화유산이 내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아끼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글·백승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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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