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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맘스클럽’은 7년 전 결성됐다. 이혼이나 사별로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40~50대 한부모 엄마들의 모임이다. 이대성산종합복지관의 한 사회복지사가 한부모 엄마와 아이들을 모아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사회복지사는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 있게, 작지만 크게, 당당하게 살아달라”며 모임에 ‘빅(big)’이라는 글자를 붙여줬다.

사회복지사의 바람대로 엄마들은 ‘커졌다’.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 엄마’라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늘 고개 숙이며 동네를 걸었던 엄마들은 당당해졌다. 2008년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 그래도 괜찮아>(여성신문사)를 펴냈다.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엄마들은 다른 복지관에 있는 한부모 엄마들에게 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강연하기도 한다.

두 남매를 홀로 10년째 키워온 원순자(46)씨는 “(기초생활)수급자 집에 TV가 생기면 사람들이 쑥덕거리고, 수급자가 슈퍼마켓에서 뭘 사는지도 궁금해해서 예전에는 라면 하나를 사도 항상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녔다”며 “하지만 빅맘스클럽에서 다른 엄마들을 만나면서 점차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세상 앞에 당당해졌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발 더 나아가 남을 돕기로 했다. 2009년 7월부터 “세상으로부터 받은 도움을 조금이라도 갚아주고 싶다”며 ‘사랑의 반찬봉사’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마다 사회복지관 인근에 사는 주민 15명에게 반찬을 직접 만들어 전달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독거노인·소년소녀가장·장애인 등이 대상이다. 엄마들 중에도 기초생활 수급자가 2명이고 임대아파트 주민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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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처지 엄마들과 대화하며 상처 치유

음식 재료비는 엄마들이 1만원씩 걷은 회비와 각종 바자에 참가해 모은 돈, 약간의 후원금으로 충당했다. ‘빅맘스클럽’ 회장을 맡고 있는 홍영미(45)씨는 “대부분 소극적인 성격에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엄마들이었는데 봉사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바뀌었다”며 “봉사활동이 남을 돕는 것뿐 아니라 엄마들도 치유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변한 것은 10년 전 이혼하고 세 남매를 홀로 키워온 홍씨다. 홍씨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영구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 어려운 환경은 홍씨를 늘 숨게 만들었다. 홍씨는 “지금도 쉽지 않지만 10년 전에는 이혼을 한 것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었다”며 “여기에 기초생활수급자라는 딱지까지 붙으니 늘 사람들을 피하고만 싶었다”고 말했다. 생활도 쉽지 않았다. 홍씨 가족이 한 달에 지원받는 돈은 120만원. 4인 가족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때문에 홍씨는 자투리 시간까지 늘 일을 해야 했다. 홍씨는 “우리 가족 살기에도 벅찼고 남을 돌볼 시간은 상상도 못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변했다. ‘빅맘스클럽’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한부모 엄마들을 알게 된 후부터다. 그는 “나만 힘든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고, 엄마들과 대화를 하고 나면 속도 후련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홍씨는 엄마들 중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람이 됐다. 지난해부터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주민센터에서 주관하는 마을합창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한다. 이제 그는 사람들을 더 이상 피하지 않는다. 딸들과 함께 가족합창단을 만드는 게 꿈이라는 홍씨는 이제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선다.

 

“세상에서 도움 받았으니 돌려주고 싶어요”

17년 전 산업재해로 남편과 사별한 뒤 두 남매를 홀로 키워온 권혜영(46)씨도 ‘빅맘스클럽’을 만난 뒤 변했다. 권씨가 29살이던 해 벽돌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산업재해였지만 남편이 일하던 회사의 사장은 “가진 돈이 없다”고만 말했다.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소용없었다. 사장이 이미 재산을 전부 부인 명의로 돌려놓은 뒤였다. 받아야 할 보상금은 6,000만원이었지만, 권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1,000만원뿐이었다. 그때 권씨의 딸은 6살, 아들은 3살이었다.

이때부터 권씨는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학원·공공기관 청소부터 마트에서 물건 나르는 일까지 자리만 주어지면 다 했다. 마트에서 짐을 나르는 일을 하다 허리에 무리가 와 디스크 수술까지 했다. 권씨의 자녀들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경제적인 궁핍보다 권씨를 힘들게 한 것은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이었다. 권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옷 한 벌이라도 사거나 퍼머라도 하면 이웃들이 바람났다고 수군거리는 등 왜곡된 시선이 괴로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권씨는 더 주눅들어 살아야 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갔다.

그런 권씨를 바꿔준 것은 한부모 엄마들이었다. 권씨는 모임을 통해 점차 당당해졌다. 수군거리는 이웃들에게도 먼저 말을 걸었다. 그는 “과거에는 마트에 갈 때도 사람들과 마주칠까 봐 빨리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른 엄마들을 만나며 달라졌다”고 말했다.

‘빅맘스클럽’의 엄마들에게는 각자 맡은 반찬봉사 대상자가 있다. 권씨는 ‘딸 같은 아이’에게 반찬을 전해준다고 했다. 권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로 사는 아버지를 모시며 남동생이랑 사는 아이인데 가장이라는 점이 나랑 비슷하게 느껴진다”면서 “반찬봉사를 하며 속 이야기도 엄마와 딸처럼 터놓을 정도로 친해졌다”고 말했다.

3월 9일, 엄마들은 돼지고기 장조림과 무생채를 만들었다. 힘든 상황임에도 봉사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한 엄마가 말했다. “홀로 아이를 키워오면서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이렇게 작게라도 제가 받은 도움을 세상에 돌려주고 싶어요.”

글·박순봉(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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