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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거리의 시인’ 김상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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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소년의 집은 가난했다. 설상가상으로 태어난 지 3일 만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이런 가정환경 탓에 당시 소년에게 배움은 사치였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들어가 그나마 영어 알파벳을 처음 배운 게 전부였다. 20세가 되자 가난으로 못 배운 설움을 풀기 위해 책을 들었다. 주경야독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루는 운전을 하고, 다음날은 문학을 공부했다. 24년 무사고 운전의 베테랑 택시기사이자 시인, 김상현(57) 씨 이야기다.

20대였을 때 김상현 씨 책 구입비는 월급의 절반 가까이였다.

어린 시절 가난해 못 배운 설움 때문에 김씨는 무작정 문학을 배우고 싶었다. 낮에 일하고 밤엔 배움에 심취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그만큼 그는 배움이 간절했다. 

1981년부터 김 씨는 택시기사 일을 시작했다. “근무 환경은 열악했지만 격일제로 근무하는 점이 좋았습니다. 하루 일하면 다음날은 꼬박 공부만 할 수 있었으니까요.” 택시기사를 하면서 문학도로서의 꿈을 더욱 키워갔다.

김 씨가 처음 시를 통해 다룬 주제는 당시 형편없던 법인택시 업계의 근무 환경이었다. 김 씨 역시 법인택시 기사로 열악한 근무 환경을 몸소 체험하던 차였다. 그래서 택시업계의 실상과 운전기사의 애환을 담은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의 첫 시집에는 택시업계의 노동 현실을 다룬 시들이 많다.

또 하나 빼놓지 못할 시의 주제는 그의 할머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김 씨를 지극히 보살핀 할머니. “할머니 품에 안겨 동네를 돌아다니며 동냥 젖을 먹었다고 해요. 가난하지만 배우라고 채근하셨던 분도 할머니셨지요. 그래서 습작 시절에도 할머니에 대한 시들을 쓰면서 시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잊지 못할 소중한 분입니다.”

2000년대에 들어 잠시 문학을 따분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문단에 등단하고 시집도 출간했지만 택시기사란 한계 때문에 회의감이 들던 때였다. 그때 그는 노래 공연을 시작했다. “우연치 않게 가요사랑봉사단이란 단체에 가입했습니다. 그때 느꼈던 것이 할머니에 대한 모정이랄까요. 독거노인 분들과 양로원을 찾아가 노래 공연을 하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매월 2~3회씩은 봉사로 노래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두 번은 저녁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에게 애창곡을 불러주고 있다. 그의 아내와 함께다. “올해로 5년째 거리 공연을 하고 있는데 시민들로부터 ‘알밤 택시기사’라고 불립니다. 왜냐고요? 제 머리카락이 항상 짧아서 ‘알밤’ 같거든요(웃음).”

그의 좌우명은 ‘만족하며 살자’다. 직업에 만족하고 돈의 노예가 되지 말자는 것이 원칙이다. 일상에 충실하고 꿈을 가지고 살되 나름대로 인생을 꾸며가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김 씨의 꿈은 실버 노래교실의 유명한 강사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는 뭔가에 도전하는 일이 늘 즐겁다. 노래 가사를 멋들어지게 쓰는 작사가도 그의 꿈 중 하나다. “시인이 노래 가사를 쓰는 것도 꽤 멋질 것 같지 않아요?” 김 씨의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웃음과 물음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글·남형도 기자 2013.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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