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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인천 부평구 공공갈등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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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민들은 송전탑을 옮겨오면 주거 환경이 크게 나빠진다며 반발하고, 재개발 조합은 법적 하자가 없다고 주장했어요.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죠. 제가 끼어들 틈이 있을까 싶었어요. 상대방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니 아예 소통 자체가 안됐죠.”

조용하던 인천 부평구 십정동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건 2004년이다. 재개발 때문에 주거지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던 고압 송전탑(1977년 설치)을 이설하기로 하면서다. 재개발을 하는데 송전탑을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조합 측은 좀 더 윗동네로 이설하려 했는데 당연히 예정지 인근 주민들이 반발했다.

사업은 지연됐고, 소송이 줄을 이었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도 찬반이 갈리면서 민심까지 흉흉해졌다. 인천시와 부평구가 나서 수많은 대안을 제시했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해 7년째 손을 놓고 있는 상태였다.

김미경(50) 인천 부평구 공공갈등조정관이 이 문제를 처음 접한 건 갈등이 극에 달한 2010년 7월이었다. 20여 년 전 빈민 관련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함께한 인연이 있었던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다.

“처음엔 해볼 만하다 싶었어요. 20년 넘게 NGO 활동을 하면서 나름 고민이 있었거든요. 새로운 이슈를 생산하는 것도 NGO의 중요한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하지만 막상 뛰어드니 상황은 생각과 달랐어요. 주민들에게 가서 뭘 얘기하려 하면 스파이 취급받기 일쑤였죠. 조합측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라고 묻는 통에 대화 자체가 안됐어요.”

상황은 재개발 조합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법원이 ‘거리와 높이 등 법적 기준을 지켰으니 사업을 진행해도 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조합이 실시계획변경 인가를 받자 이를 알게 된 주민들은 매일같이 구청에 몰려와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일단 김 조정관은 조합 측에 한달만 공사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조합 측은 안 된다고 했죠. 공사를 연기하면 하루에 수천만원씩 손해를 본다는 게 이유였어요. 아무리 법적 하자가 없더라도 주민들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있지 않느냐며 설득했어요.

주민들에겐 공사 방해로 인한 비용을 주민들이 직접 물어내야 한다는 점을 들어 자제를 요청했죠. 시간을 번 뒤엔 왜곡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데 주력했어요. ‘송전탑 들어오면 큰일난다더라’ ‘누가 얼마 받았다더라’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 때문에 문제가 더 커진 측면이 있었거든요. 이런 정보의 불일치를 해결하니 타협점이 보였어요.”

김 조정관의 선의를 알아챈 것일까. 주민과 조합 모두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조건들이 오갔고, 양측은 2011년 4월 들어 극적으로 입장을 좁혔다. 우선 송전탑을 이설하되 5년 뒤 다시 이설하거나 지중화하기로 합의했다. 조합 측이 송전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주민들의 주거지 개·보수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공공갈등조정관이라는 이름으로 십정동 문제에 뛰어든 지 100일 만에 거둔 성과였다.

 

20년 넘게 NGO활동…갈등 조정엔 민간전문가 필요해

조정문에 양측이 서명하던 날, 김 조정관은 모두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당신 없었으면 해결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등을 두드려주는 동네 주민의 말 한마디에 그 역시 눈물을 글썽였다.

“사실 지역 내에서 갈등이 생기면 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이 해결해주길 기대하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공공기관도 이해당사자잖아요?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죠. 한쪽 편만 든다는 오해도 살 수 있고요. 그래서 제3자인 민간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봐요. 저는 은퇴 공무원이나 지역 기자,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그런 역할을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대한성공회 인천난민의 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20년 넘게 NGO 활동만 해왔다. 그러다 공공갈등조정관이란 새로운 직함을 만들어 이 일에 뛰어들었다.

일당 3만원짜리 임시직이었다. 하지만 갈등 해결에 성과를 내면서 김 조정관은 2011년 4월 6급 상당 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됐다.

부평구가 전국 최초로 별도의 갈등조정관을 운영하자 다른 지자체들도 갈등 관련 부서를 편성하거나 갈등조정관을 임명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사회혁신실 내에 공공갈등담당관실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성남시도 전문계약직 공공갈등조정관을 뽑았다.

김 조정관은 지난해 그동안의 경험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정비사업 추진 지연에 따른 갈등요인 길라잡이’라는 책을 펴냈다.

다양한 지역 내 갈등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식을 정리한 책이다. 올해는 민원인에게 시달리는 담당 공무원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해묵은 고질 민원이나 재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해요.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건 물론이고, 폭언과 폭행에 노출돼 있는 경우도 많아요. 갈등을 해결해야 할 공무원들이 정작 내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치유가 필요한 거죠. 지난해부터 힐링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좋아 올해는 교육 과정을 늘렸어요.”

김 조정관은 민사법원의 조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조정과 화해가 그의 직업인 셈이다. 그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했다.

“부평구는 주민 58만명이 거주하는 매우 큰 자치구예요. 70여 곳에서 재개발이 진행 중인 지역이기도 하고요. 그만큼 다툴 일이 많고 집단 민원도 많죠. 더 바빠지겠죠(웃음). 저는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 함께 고민해야 ‘갈등 없는 세상’ ‘대화와 타협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요?”

글·장원석 기자 201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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