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서울 관악구 난곡동. 미로처럼 얽힌 가파른 골목길을 앞장서 가던 유창순(72) 씨가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층 현관문 앞에 멈춰 섰다.
“어머니, 저 왔어요.”
인기척을 낸 유 씨가 천천히 문을 열자 부엌 하나 딸린 방 안쪽에서 이불을 덮고 누워 있던 김모(91) 할머니가 일어나 앉으며 유 씨를 반겼다. 유 씨는 “홍시 좀 드시라고 가져왔다”며 들고 갔던 장바구니에서 홍시 몇 개를 꺼내 식탁 위에 놓은 뒤 친정집 찾은 딸마냥 냉장고와 화장실 문을 열어보고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지만 둘은 모녀 사이가 아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김 할머니에게는 딸 하나가 있지만 왕래가 거의 없다.
현관문은 하루 종일 잠궈놓고 누가 와도 잘 열어주지 않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전화를 하고 찾아오는 유 씨가 올 때만 미리 열어놓는다고 한다.
유 씨는 김 할머니의 메마른 팔다리를 주무르며 아픈 곳은 없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살갑게 대했다. 안마와 말벗을 겸하는 가정봉사원 활동이다.
올해로 24년째. 그 사이 가까운 곳에 신림종합사회복지관이 들어서고 난곡동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재가요양보호사와 가사도우미들이 생겨났지만, 김 할머니만큼은 아직도 유 씨가 직접 챙긴다. 나이 들면 적적한 게 제일 무섭다. 친딸처럼 말벗을 해 드리며 홀로 사는 어르신의 마음까지 돌본다.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정이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아무 말씀 없으셨지만, 이제는 자식한테 못할 이야기도 나한테 술술 다 해요.”
밀린 빨래도 하고 집 청소에 목욕 봉사도 해 드린다. 아프면 남편 임영환(79) 씨가 직접 차를 운전해 병원으로 모신다.
주민센터나 복지관 갈 일이 있을 때도 동행한다.
유 씨의 하루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봉사로 빠듯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남편과 손주 셋의 아침밥부터 챙긴다. 손주 중 둘은 대학생, 하나는 고2. 한창 왕성한 나이인지라 밥해 먹이고 빨래·청소해 주는 일이 쉽지 않지만, 공부를 잘해 장학금을 타오는 것 보면 기특하고 고마워 힘이 난다.
낮에는 어머니 네 분을 모신다. 한 분은 친정어머니, 나머지 세 분은 피 한 방울 안 섞인 생판 남이다. 올해 97세인 친정어머니는 지난 4월 골반뼈를 다쳐 서울 독산동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 유 씨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병문안을 가면 못 알아보기도 해 마음이 짠하다.
“어제는 손주들 밥해 주러 돌아간다니까, 저보고 찻길 건널 때 손들고 건너래요. 병실 안에 웃음이 터졌어요. 백 살이 돼도 부모는 부모예요. 얼마나 웃었는지.”
다른 세 분 어머니는 김 할머니를 포함한 동네 독거노인들이다. 다들 20년 이상 알고 지내면서 이제 자식보다 더 가깝다. 한 분은 유 씨네 다세대주택에 전세로 산다. 12년 전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1,500만원 받고 들여서 지금껏 전세금 한번 올려 받은 적이 없다.
유 씨는 지난 1989년 봉천동 관악노인복지관이 처음 개관할 때부터 가정봉사원으로 독거노인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걷는 게 불편해 그만뒀지만, 2005년까지는 일주일에 5일씩 아침저녁으로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 독거노인 60여 가구를 돌며 도시락과 밑반찬 배달도 했다. 관절염이 심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빼먹거나 미루지 않았다.
경기도 남양주의 백석꾼 양반집안에서 5남5녀 중 장녀로 태어난 유 씨는 중학교 졸업 후 집에만 있다가 20대 초반에 남편 임영환 씨와 결혼해 지금까지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면장을 하셨던 친정아버지는 다른 마을 어르신과 혼사를 결정했다. 그 분이 남편의 부친이고 나중에 유 씨의 시아버지가 됐다. 유 씨는 남편 임 씨가 “진짜 첫사랑”이라며 깔깔 웃었다.
결혼 후 첫 10년 동안은 보따리 살림이었다. 원호청(현 국가보훈처)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거의 매년 전근을 했다. 대구, 여수 등 낯선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30대 중반에야 서울로 올라와 지금의 난곡동 집에 살게 됐다.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밖에 몰랐던 유 씨가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남편이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 보는 게 좋다, 자원봉사도 사회생활이라며 봉사활동을 적극 추천했어요. (나도) 평생 집안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심심했어요. 그때가 넷째 가졌을 때였는데 그래도 밖으로 나다녔어요.”
본격적인 봉사활동에 뛰어든 것은 1975년 새마을부녀회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신림3동 부녀회원들과 신림동, 봉천동 판자촌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심고 어려운 이웃의 집안일을 도왔다. 1978년 남부소방서 의용소방대 부녀반장, 1991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청소년선도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봉사 권한 남편과 응원하는 자식·손주들 고마워”
남편 임 씨도 10여 년째 지역 학생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임 씨는 한때 구청에서 민원인의 서류 작성을 돕는 자원봉사를 했는데, 당시 주민등록증을 만들러 온 고등학생들이 자기 이름을 한자(漢字)로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한자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정식 한자교습소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유 씨는 24년을 한결같이 봉사하며 살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0월 ‘2013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에서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남 돌보느라 하루하루가 바쁜 유 씨에게 “자기 생각도 좀 하고 쉬면서 지내라”는 주변의 만류도 많지만, 그래도 유 씨는 힘 닿는 데까지 어려운 이웃을 보살필 생각이다.
“너무 힘들어서 이제 그만둘까도 했는데 이렇게 큰 상까지 주니 어떡해. 계속 해야지요. 평생 내 시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잠깐 앉아 쉬는 게 다예요. 그래도 감사해. 봉사하라고 권해 준 남편도 감사하고 끝까지 응원해 준 자식, 손주들도 너무 고마워요.”
글·남창희 객원기자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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