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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세계기록을 세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주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때 작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이상화 본인도 놀랐고,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랐다. 지난 1월20일(현지시각) 캐나다 캘거리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2012~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6차 대회 여자 500미터 디비전A(1부 리그) 2차 레이스. 이상화는 36초80만에 결승선을 돌파했다. 중국의 위징(28)이 지난해 1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세계스프린트선수권대회 때 작성한 종전기록(36초94)을 무려 0.14초나 앞당긴 세계신기록이었다.

바로 전날 1차 레이스에서 36초99의 기록으로 한국기록을 경신한 지 하루 만에 이룬 업적이어서 놀라움은 더 컸다. 이상화는 하루 만에 자신의 최고 기록을 0.19초나 경신한 것이다. 이로써 이상화는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는 사상 처음 36초90의 벽을 깬 선수가 됐다.

이상화에게는 애초부터 대기록의 조짐이 있었다. 2012~2013 시즌 500미터 경기가 열린 월드컵 4개 대회 7개 레이스에서 우승을 독식하며 7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날 1차 레이스에서 이상화가 한국기록을 작성하며 세계기록에 0.05초 차로 접근하자 “조만간 세계기록도 경신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하지만 이상화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더 빨랐다. 이날 2차 레이스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하며 여덟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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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이상화는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약점이 뚜렷한 선수였다. 폭발적 막판 스퍼트에 비해 초반 스타트가 약했다. 육상 100미터에 비견되는 스피드스케티이팅 500미터는 단거리 종목의 특성상 초반 스타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상화는 밴쿠버올림픽에서 첫 100미터 구간을 10초4에 돌파했다. 은메달을 딴 예니 볼프(34·독일)가 첫 100미터를 10초2에 돌파한 것과 큰 차이가 났다.

하지만 올 시즌 이상화의 약점은 사라졌다. 올 시즌 들어 이상화는 첫 100미터 구간을 평균 10.31초에 돌파한다. 세계기록을 경신한 20일 레이스에서는 전체 선수 중 가장 빠른 10초2에 통과했다. 올림픽에서 이상화를 지도했던 김관규 대한빙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이상화는 첫 100미터 기록이 약점이었는데 지금은 이 구간 기록이 워낙 좋아졌다”며 초반 페이스 향상을 상승세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이상화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큰 변화는 스트로크(다리 교차) 수다. 다른 선수들이 다리를 10번 교차할 때 이상화는 12번 정도를 할 수 있도록 훈련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이후 스트로크를 늘렸다. 윤성원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사의 분석이다. 빙면을 미는 스트로크 횟수를 다른 선수의 1.2배로 늘리면서 추진력도 그만큼 배가됐다는 것이다.

스트로크 횟수를 늘릴 수 있었던 데에는 밴쿠버올림픽 당시 22인치이던 허벅지의 굵기를 23인치로 늘리는 등 하체 근육을 더욱 강화한 것이 주효했다. 반면 체중은 2킬로그램 정도 줄였다. 체중 대비 근육량이 증가하면서 짧은 시간에 폭발적 힘을 내는 단거리 종목에 최적화한 몸으로 업그레이드했다는 것이 윤박사의 분석이다. 그러나 체력과 근지구력이 약화돼 1,000미터 기록은 세계 정상권에서 멀어졌다.

이상화는 이제 500미터에서 지존이나 다름없다. 이상화는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에도 2012년 종별세계선수권대회 우승, 2012~2013 시즌 8회 연속 우승 등 독주를 이어왔다. 이번 시즌 이상화가 금메달을 싹쓸이하는 동안 경쟁자인 위징과 왕베이싱(28·중국)은 금메달 구경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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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상화는 올 시즌 8개의 금메달을 추가해 13개의 월드컵 금메달을 보유하게 됐다. 이상화가 역대 월드컵에서 따낸 전체 메달은 53개나 된다. 국제빙상경기연맹이 집계한 메달 순위에서 남녀 통틀어 이상화보다 많은 메달은 따낸 선수는 볼프(82개)뿐이다.

이런 추세라면 2014 소치동계올림픽에서 2연패 달성도 머지 않았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소치올림픽에서 이상화를 위협할 만한 적수가 안보이기 때문이다. 이상화가 내년 소치에서 금메달을 다시 목에 건다면 카트리오나 르메이 돈(최고기록 37초22·캐나다) 이후 12년 만에 여자 500미터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벌써부터 관리만 잘한다면 보니 블레어(미국) 만이 가진 단거리 3연패(88년 캘거리·92년 알베르빌·94년 릴레함메르) 기록을 넘볼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온갖 새로운 기록에 대한 기대 속에서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제 이상화의 적수는 오직 이상화 자신뿐이라는 사실이다.

글·허승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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