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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은 베트남 남쪽에 있는 작은 도시다. 해발 1,500미터에 위지한 고산도시로 1년 내내 기온이 서늘하다. 요즘 고령지농업연구센터 이종남 박사는 달랏으로 전화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가 개발한 여름딸기 품종인 ‘고하’의 베트남 재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베트남 하면 고온다습한 동남아 이미지가 떠오르죠. 하지만 달랏은 달라요. 한국의 대관령 같은 환경입니다. 고랭지채소를 기르기에 적합한 곳이어서 딸기 새 품종 개발 이후 시험재배지로 계속 염두에 두었던 후보지입니다.”

이 박사는 주위에서 딸기박사로 통한다. 1999년부터 새 딸기품종 개발에 매진했다. 원예학과를 나온 그는 1993년부터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산하 고령지농업연구센터에서 파프리카 품종 개발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1999년부터 고온재배가 가능한 여름딸기 품종 개발에 주목했다. 한국에서 주로 먹는 딸기는 저온에서 재배하는 겨울딸기다. 딸기의 재배 계절이 겨울이다 보니 1년 내내 딸기 농사를 짓고 싶은 농가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여름 재배가 가능한 딸기 품종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과질이 딱딱하고 당분이 부족해 농민들 사이에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 박사는 맛있는 여름딸기 개발이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서 딸기 연구를 시작했다.

그가 새 딸기 품종 개발에 뛰어든 또 하나의 이유는 로열티였다. 이 박사의 본 업무는 농민에게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는 새품종과 재배법 개발이었다. 하지만 애써 새로운 재배법을 찾아내도 결국 수익은 종자의 저작권을 가진 글로벌 종자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거둔 결실이 우리 농민에게 돌아가지 않는 현상을 목격한 그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새 품종을 직접 개발해보자는 야심이었다.

“제가 하루라도 빨리 새 딸기 품종을 개발해야 외국 회사에 내는 로열티도 줄이고, 그만큼 농민에게 도움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을 새워가며 연구에 매달린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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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야심 찬 도전에는 만만찮은 난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추·상추·배추 같은 채소는 씨앗의 유전자만 분석하면 새 품종을 개발할 수 있다. 그런데 유전자 구조가 훨씬 복잡한 딸기 품종 개발은 채소와 차원이 다르다. 1만 개를 교배하면 1만 개의 특성이 모두 다르게 나올 정도다. 그만큼 우수 종자를 고르기조차 어려운 분야다. 그리고 그 작업은 일일이 손으로 해야 한다. 이박사가 딸기 품종 개발을 3D업종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1,000개의 딸기 뿌리에서 쓸 만한 종자는 10개 정도 나옵니다. 이를 교배해 다시 1,000개로 만든 다음 다시 10배 정도 배양합니다. 이런 작업을 7년 정도 한 다음에야 적합한 품종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연구 개발에 매진한 사이 정부는 시간을 벌어줬다. 한국은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동맹(UPOV)에 가입했다. 이 동맹에 가입하면 한국에서 재배하는 외국 품종에 대해 농민들이 로열티를 내야 한다. 정부는 끈질긴 협상 끝에 주요 품종에 대한 로열티 적용 시점을 10년 후로 미뤘다. 2012년까지 한국 고유 품종을 개발하면 농민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2012년까지 새 품종 개발을 위해 이 박사는 하루 하루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연구에 매달렸다.

한국산 여름딸기 고하 품종은 그가 연구를 시작한 지 9년 만인 2008년 탄생했다. 영국산 딸기 ‘플라멩코’와 네덜란드산 딸기 ‘엘란’을 교배해 개발한 새 품종이다. 딸기 수입 품종은 포기당 종묘 비용이 1,000원 수준이다. 하지만 고하는 300원에 불과하다. 그 이득은 온전히 농민들에게 돌아갔다.강릉과 무주에 고하재배단지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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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고하 품종이 자리를 잡자 이 박사는 해외 진출로 눈을 돌렸다. 그가 주목한 지역은 동남아였다. 동남아 지역은 대체로 무더운 기후 탓에 딸기가 귀한 편이다. 그만큼 딸기 값이 비싼 편이어서 현지 농민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라도 품질 좋은 종자라면 구매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고령지농업연구센터의 상급기관인 농촌진흥청이 이를 알고 발 빠르게 움직였다. 베트남 달랏처럼 딸기 재배가 가능한 고산지역을 염두에 두고 현지 조사에 나섰다. 2012년 3월 캄보디아, 6월에는 베트남 현지재배를 위한 계약에 성공했다. 농촌진흥청은 중국과 베트남에서 품종특허 출원도 완료했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시장을 알아보는 중이다.

이 박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딸기를 6개월 정도 수확할 수 있지만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는 1년 내내 수확할 수 있어 현지의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그의 새 품종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 종자시장에서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5퍼센트에 그친다. 2012년 한국이 줘야 할 종자 관련 로열티는 205억원에 이른다. 그는 “국산 품종으로 로열티를 받는 시대를 열어 보람이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고하에 이어 세계에 소개하려고 준비한 품종은 관상용 딸기인 ‘관하’다. 관하는 1년 내내 분홍색 꽃을 피우는 관상용 딸기 품종이다. 주요 수출국으로 일본을 겨냥한다.

이 박사는 “앞으로 다양한 딸기를 개발해 한국농민에 도움이 되는 동시에 세계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조용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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