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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의 중심 천호동에는 60년, 3대를 이어온 대장간이 있다. 강영기(62) 씨와 아들 단호(33) 씨가 운영하는 동명대장간이 그곳이다. 단호 씨의 조부가 강원도 철원에서 대장간을 시작한 것부터 계산하면 역사가 무려 72년이다. 조부가 6·25 직후 천호동에 자리를 잡았으니 올해로 꼭 60년이 됐다.

그 이후 쉼 없이 대장간을 운영했지만 이 분야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하다. 원래 대장간에서 만드는 주된 물건은 농기구·건설공구 등이었다. 그러나 농사짓는 사람도 줄어들고,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대장간이 설 땅이 점차 좁아졌다.

부친 강영기 씨는 “싼 값의 중국산 각종 공구와 농기구가 흘러 넘쳐 지금은 제값 받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동명대장간도 궁여지책으로 공장에서 만든 철물과 공구를 받아 팔아야 그나마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매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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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대장간의 운명은 ‘양(量)에 대한 질(質)의 전쟁’으로 압축할 수 있다. 질을 담보하지 않으면 값싸고 표준화한 공장제품의 물량공세를 이길 수 없다. 4평 남짓 좁은 공간에서 쇠를 달구고, 식히고, 두드리는 고된 노동을 참아낼 수 있는 이유도 수제품을 선호하는 충성고객들의 강력한 성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은 공장제품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제대로 된 담금질’에 있다.

천호동은 한때 서울의 주요 상권 중 하나로 손꼽혔다. 잠실 등 인근 지역이 빠르게 성장하고 유동인구가 분산되면서 침체의 늪에 빠졌던 천호동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기형적 도로 구조로 정체가 심했던 천호동 구(舊) 사거리에 ‘로데오거리’가 조성되면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늘어 활기를 찾은 것이다. 휘황찬란한 천호동의 밤 거리와 동명대장간의 투박한 모습은 기이한 대비를 이루기도 한다.

서울로 공급되는 경기미·숯·장작·건축재·축산물·채소·어물 등이 모두 이곳을 거쳐갔다. 송파의 우시장은 특히 컸으며, 전국에서 모여든 마상행인, 배를 타고 다니는 선상, 특히 한강을 중심으로 한 경강상인(京江商人), 그리고 경기도와 경상도 지방에서 몰려드는 여행인·관리 등으로 붐볐다고 한다. 거상·거부가 많은 지역이었고,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구할 수 없는 것이 드물었다. 대장간의 숨은 전통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인문·산업지리적 배경이다.

대장간에는 늘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건설현장의 인부들도 동명대장간의 주요 고객 중 하나다. 인부가 날이 무뎌진 정을 한보따리 들고 와 내려놓으면 부자의 손길이 바빠진다. 먼저 부친 강씨가 시뻘건 화염을 내뿜는 화덕에 정을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달군다.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모루 위에 내려놓으면 아들 단호 씨의 둔중한 망치질이 시작된다. 부자의 일장단은 리드미컬하고, 긴밀한 호흡으로 정겨운 흥이 넘쳐흐른다. 수십 개의 정을 모두 손질하는 고된 노동 끝에 손에 쥐는 돈은 고작 몇 만원 정도다. 공사장 정 수리비는 큰 것 하나에 1,500원, 작은 것은 1,000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자는 새벽 6시 화덕에 불을 지피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섭씨 2,000도에 이르는 화덕 앞 작업은 수도사의 고행이나 다름 없다. 달구고, 두드리고, 식히는 과정을 무한반복해야 하는 운명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천직이므로 부자의 소명의식은 남다르다.

대장간 제품은 공장제품보다 단단해서 그 수명이 훨씬 길다는 점을 고객들은 잘 알고 있다. 요즘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고객들이 대장간을 찾는다. 공사장 인부와 인근 채소 농가 농민들 말고도 단골이 많다. 주방용 대형 칼을 제작해 달라는 음식점 주인, 정원 일을 많이 하는 전원주택 주민, 주말농장 농기구를 구입하려는 농장주들로 대장간은 늘 붐빈다.

한번 단골이 되면 저렴한 가격에 애프터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인간적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일부러 아이들을 데려와 노동의 힘겨움과 그 보람을 몸소 체험하게 하는 부모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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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잇는다는 것은 늘 다소간의 갈등과 고민이 따르게 마련이다. 명맥을 잇고 싶은 아버지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은 아들 간의 갈등 유형이 그 중 하나다. 반대로 아들을 더 너른 세상으로 보내고 싶은 아버지와 굳이 아버지의 직업세계에 몸담고자 하는 아들 간 마음의 갈등도 있다. 강씨 부자의 경우다. 부친 강씨는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전통적으로 대장장이는 천한 직업이었다. 열네 살에 시작한 이 일을 그만두고 더 편한 직업을 찾고 싶기도 했다. 단조롭고 힘든 일을 하며 거의 무한에 가까운 인내심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의 단호한 결심을 끝내 꺾을 수 없었다.”

무엇이든 한우물을 파다 보면 호기가 찾아온다. 2012년 동명대장간은 서울시로부터 ‘전통상업점포’로 지정돼 대장간을 널리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전문가의 컨설팅과 함께 점포 운영자금을 저리로 융자받아 살림살이도 훨씬 나아졌다.

아들 강씨는 “대장장이는 힘과 솜씨, 끈기의 3박자를 갖춰야 하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바닥에서 진정한 장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눈썰미’가 필수다.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예술적 감각과 미추를 판별하는 감식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최근 그가 애써 추구하는 방향과 길이기도 하다.

전통방식의 대장간으로 100년을 채우는 것이 단호 씨의 인생 목표다. 평생직업으로 이 대장간을 운영하겠다는 각오다. 대장장이는 전통과 맥이 닿지만 결코 과거에만 안주하는 일이 아니다. ‘창의력과 기술, 끈기와 저력’이 한국경제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이끈 동력이라면 대장장이 세계의 미덕도 그와 다르지 않다. 대장장이 강씨 부자가 새해 한국인의 초상으로 부족함이 없는 이유도 그같은 끈기와 저력 때문이다.

글·한기홍 월간중앙 기자 |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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