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의 고색119안전센터에서 ‘장학금 사업’을 처음 고민한 것은 2008년의 일이었다.
“당시 우리 센터에선 관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소방홍보위원회’라는 자원봉사대를 모집한 적이 있어요. 직원들과 뜻을 맞춰 활발하게 활동을 해오셨는데, 소방본부 방침에 따라 해산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소방홍보위원들이 ‘이대로 헤어지긴 섭섭하다’며 ‘어울림 봉사회’라는 단체를 조직했어요. 그것을 지켜보던 우리 소방대원들도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소매를 걷어붙여 장학기금을 모으게 된 겁니다.”
고색119안전센터의 ‘맏형’인 정철호(58) 소방장의 설명이다. 이후 5년 동안 고색119안전센터 소방대원들은 9회에 걸쳐 37명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은 소년소녀가장, 고학생 등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모범적으로 학교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이들이다.

이곳 센터 소방대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장학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월급에서 매달 5천원씩 장학기금을 적립하고 있다.
왜 하필 5천원일까? 정 소방장은 “좋은 뜻에서 하는 일이지만 한사람이라도 부담을 느끼면 의미가 퇴색될 것 같아 5천원으로 정한 것”이라며 “사실 저희도 봉급이 그리 많지 않아서…”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전 직원이 동의했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불만이 없을까. 올해 3월 발령을 받아 새 식구가 된 이현택(52) 2팀장은 기금을 걷는 것에 불만은 없었는지 질문을 받자 “좋은 일을 하는 건데 왜 반대를 하겠어요”라며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처음엔 단순히 ‘좋은 일’ 정도로 생각했는데 직접 눈앞에서 아이들이 장학금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내가 조금씩 모은 돈이 이렇게 크게 쓰일 수도 있구나’하는 감격스런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돈은 학생들을 위한 것도 되지만 우리 자신들을 위한 돈이기도 하죠.”

이 팀장의 설명을 듣고 있던 다른 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홍일점인 황미란(37) 소방장은 “사실 커피 한 잔, 밥 한 끼 덜 마시고 덜 먹으면 모을 수 있는 돈이다”면서 “‘5천원의 힘’을 직접 확인하면서 돈을 허투루 쓰는 일이 줄어들었으니 오히려 감사한 일”이라고 고백했다.
나눔의 ‘보람’을 뛰어넘어 ‘감사’를 얘기하는 이들의 모습은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현대인들에겐 다소 낯설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상시 업무를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고색119안전센터의 관할구역은 수원시의 다른 지역에 비해 낙후된 곳이다. 그래서 소방공무원의 일상적인 업무인 안전점검, 화재진압, 구조 활동 등을 펼치다 보면 관내 주민들의 어려움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이들이 직접 나서서 눈에 보이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하기엔 여러모로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이 팀장은 “두 달에 한 번씩 다 함께 인근 요양원을 찾아가 목욕봉사, 시설보수를 하는 등 우리 힘으로 해드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선 우리도 큰 도움을 드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달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기쁘고 감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16명의 대원이 매월 5천원씩 모아도 일 년 1백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에 이곳 소방대원들은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모자란 장학금을 충당하고 있다. 소방서 건물 뒤편의 공터에 작은 창고를 만들어 구급용품과 소방장비, 생활용품 등에서 나온 박스와 신문, 복사용지 등의 폐지를 알뜰하게 모아 판매한 수익금을 장학기금에 보태는 것이다.
유재웅(36) 소방교는 “사실 매일 나오는 폐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재활용쓰레기로 버리는 대신 몇 달 모아두면 4만~5만원가량의 지폐로 멋지게 탈바꿈을 한다”며 “일상에서 모은 폐지가 장학기금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턴 A4지 한 장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습관이 붙었다”고 말했다.
이런 ‘부수입’을 회식비에 보태거나 사무실 비품을 구입하는 식으로 쓴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사용처는 ‘이웃사랑’이었다.

유 소방교는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사용처가 어디에 있느냐”며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는 모습을 보면 내가 모은 정성이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것 같아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바라는 거요?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기 꿈을 이뤄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거죠. 그 학생들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자기가 받았던 것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나눔릴레이’를 펼칠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고색119안전센터에서 밝힌 나눔의 등불이 점점 더 환해져 우리 사회의 그늘에 가려진 어려운 이웃들이 희망을 되찾을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글·이윤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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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