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서울을 출발해 전남 진도를 향해 달리기 몇 시간,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더욱 둥글둥글해지는 산세가 정답다. 정오를 넘어서자마자 가을 햇살이 일찌감치 기운을 잃어버렸다. 도로변이며 산자락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갈대의 모습에서 가을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제 그만인가 싶으면 다시 나타나 이어지는 코스모스 행렬에서는 손님맞이 정성이 느껴진다.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도 참 멀다. 그런데 그보다 더 아래쪽 섬에 자리 잡은 전남 진도군 창포리로 가는 길은 멀고도 또 멀었다.
이름 난 명소도 아니고, 명승지가 있는 동리도 아닌 창포리를 찾아 굳이 몇 개의 도(道)와, 방조제며 진도대교를 건너온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제14호 태풍 덴빈이 진도를 덮치며 창포리에 물난리가 나 마을이장과 공무원이 거동이 불편한 마을 어른 50명가량을 업어서 피신시켰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 말씀에 물난리 불난리 중에서 더 위급한 게 물난리라고 한다. 물난리가 나면 남아나는 게 없기 때문이란다. 자신도 살기 급급한 상황에서 한두 명도 아니고 어떻게 수십 명을 업어서 피신시켰을까. 궁금했다.
진도아리랑이나 ‘신비의 바닷가’ 정도의 명소를 떠올리며 찾아온 진도, 둥글납작한 산등성이를 따라 완만하게 경사진 논밭 사이로 오붓하게 들어앉은 농가들이 평화롭고 따뜻해 보였다.
산뜻한 현대식 건축물인 국립남도국악원이 위치한 진도읍을 지나 6킬로미터쯤 달리니 창포리 마을회관이 나타난다. 창포리의 박창원(57) 이장, 진도군 지역개발과 박정현(48) 계장과 만나기로 한 곳이다.
창포리 마을회관은 아름드리 나무가 서 있는 널찍한 앞마당, 담장 없는 단층 슬라브 건물이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 옆으로 흐르는 개천이 태풍에 내린 폭우로 넘쳐 물난리를 부른 의신천이다. 삐뚤빼뚤, 마을회관 주변으로 의신천변에 있는 전봇대 중에 멀쩡히 서 있는 놈이 없다.
“아따,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바구돌 구르는 것 맹키로 물이 굴러옵디다.”
박 이장은 지난 8월 30일 오전 9시경 덴빈이 진도를 지나며 내린 폭우로 의신천이 범람하던 상황을 ‘바윗돌 구르듯이’라고 표현했다.
마을회관으로부터 상류 쪽으로 1백미터쯤 가면 인근 마을인 가단리, 사천리, 칠전리 등에서 흐르는 우수가 모여드는 개천 두 개가 이어지는 합류지점이다. 평소엔 어른 팔뚝만한 잉어들이 사는 곳인데, 갑자기 폭우가 내리면서 상류 쪽 물이 의신천으로 몰려 아래쪽 창포리를 덮친 것이다.

창포리 출신인 박 계장은 그날 아침 출근길에 박 이장의 부인 이경자(50)씨로부터 의신천이 심상치 않다는 연락을 받고 부리나케 창포리로 왔다고 한다. 박 계장의 형제자매 모두 성장하여 마을을 떠나고, 오랫동안 파킨슨씨병을 앓아온 모친도 현재 진도읍에 거주하는 박 계장이 모시고 있지만, 어머니 또래 고령의 어르신들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사정을 뻔히 아는데 가만 있을 수 없었다.
박 이장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다 보니 다들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했다.
“진도읍에 조근리라고 있는데 ‘조근난리’라고 혀요. 비만 오면 잠기니까. 그 마을 사람들은 비만 오면 물건부터 높은 데 올리고 장판 감아부린대. 그렇게 몸만 빠져나오면 아무 일이 없어. 만날 당하니까. 근디 우리 동네는 이런 일이 첨이어서 다들 현관에서 바가지로 물 푸고 있다가 물이 닥치니 아주 넋이 나가버린 것이여. 겁났지라 참말로. 박 계장이 와서 높은 데로 피신하라고 안내방송을 하고 나서 마을회관으로 대피했던 댓 명을 높은 데로 대피시키고 오니 금세 물이 가슴팍까지 차오른 것이여.”
다행히 박 이장과 함께 농사를 짓고 있던 박 이장의 아들 박근성(20)씨, 그리고 마을주민 박복만(64)씨의 아들 박동원(37)씨가 부모 전화를 받고 마침 집에 왔다가 박 이장과 박 계장을 거들었다.
박 계장은 “누가 누구를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고 당시의 위급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업고, 부축하고, 한 사람 힘이 부족하면 둘셋이 달라붙어 마을 어르신들을 높은 곳으로 피신시켰어요.”
당시 태풍으로 진도군청도 고립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박 계장은 밝은 아침이었으니 다행이지, 새벽같이 어두울 때 물난리가 났더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숨은 건졌지만, 피해는 컸다. 침수 피해 가구 및 인구 수는 22세대 37명. 34가구 63명이 거주하는 창포리 가구를 생각하면 과한 피해다. 그뿐만 아니다. 누구는 군청에서 임대해온 양수기가 흔적도 없어 사라져버렸다. 노인들이 밀고 다니는 보행기도 도랑에 처박혔다. 박복만씨네는 아예 집을 헐고 새로 짓고 있다. 공군조종사 출신 아들이 자랑인 조동내(75) 할머니는 한 달간 마을회관에서 매일 울고 지내다 최근에야 조립식 주택을 지어 이사했다.
“쓰레기 다 치우고 나니 지금 이 정도이지. 집집마다 가구며 전자제품이며 다 못 쓰게 되어부렀어. 된장·간장만 있어도 먹고는 살텐데. 먹던 약도 없어져 부렀당께.”

무엇보다 큰 피해는 벼농사였다. 대를 잇겠다고, 고향을 지키겠다고 한국농수산대를 졸업한 박 이장 막내에게는 올해가 첫 농사였다. 침수 피해를 입어 하얗게 마른 논을 보면 누구보다 어머니인 이경자씨 마음이 찢어졌다.
“올해 유난히 나락이 좋았당께. 논을 6천평(1만9천8백여 제곱미터)을 썼는데 아주 없어져 부렀어. 애기가 논으로 간다 해서 가지마라 했제. 이 머이마가 한 열흘 밥을 끊어부렀어. 어째서 밥을 안 먹냐 하니 지는 내가 불쌍하대. 엄마가 새벽 4시에 농약통 지고 다녔는데 하믄서. 난 니가 짠하다 했지. 애가 딱 낙심을 해부렀는디, 땅은 남았응게 내년에 짓자 했재. 이해를 하드만.”
마을 주변을 돌아다녀 보니 황금빛이어야 할 평야 곳곳이 쥐 파먹듯 쓰러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하얀 죽정이들만 바싹 메말라있다. 그래도 희망을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진도의 고수익 작물이 되고 있는 울금밭은 태풍 속에서도 끄떡 없었다. 박 이장네 오미자들은 곧 빨갛게 열매가 익을 것이다. 울금은 강황의 원료다.
“오매오매. 귤을 사왔어라.”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홍수 피해를 입어 새로 벽지를 바른 집에서 커피를 내준 이경자씨는 뒤늦게 내민 귤 봉지에 반색을 하면서 홍삼 엑기스 한 봉지를 건넸다. “보약이 될 것인지 모르겄네.”
쌉싸름한 홍삼의 향이 입안에 퍼졌다. 건네는 마음만으로도 보약이 될 게 틀림없다. 어려운 지경에서도 따뜻한 인심을 잃지 않는 창포리 마을 사람들과 그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는 공무원. 메마른 세상에서도 소박한 인정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 이들과의 만남은 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글과 사진ㆍ박경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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