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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그리기’ 재능기부하는 일러스트레이터 밥 장(Bob C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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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까지, 그는 먼 길을 돌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할 때까지만 해도 그림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되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안정적인 삶이 오히려 불편했던 그는 입사 7년째이던 2003년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홍대 앞에 작업실을 얻어 1인기업으로 홈페이지 기획, 웹진 기획 등을 했지만 그 일도 2년 만에 접었다.

이후 집에서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미술을 전공한 것도,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었지만 꼬박 2년 동안 그림에만 몰두하다 보니 실력은 절로 늘었다. 소소한 일감이 생기면서 그의 직업은 자연스럽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그렇게 그림에 미쳐 살던 어느 날,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흰 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에게는 단순한 벽이 아니라 거대한 캔버스처럼 보였다. 부녀회장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벽화를 그릴수 있도록 주민들을 설득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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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는 삭막하기만 하던 아파트의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서로 얼굴도 모르던 이웃들은 벽화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벽화가 가져온 이 즐거운 변화를 보며 그는 벽화 그리기에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마침 한 방송사에서 기획한 ‘작은 도서관’ 관련 프로그램을 본 그는 프로그램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전국 작은 도서관에 벽화를 그려주고 싶다’고. 그의 글을 보고 전북 완주군에서 연락이 왔다. 2009년 1월, 그는 한달음에 완주로 내려가 기찻길 옆 작은 시골마을 도서관 벽을 예쁘게 단장했다. 아기자기하면서 동심을 자극하는 그의 그림은 도서관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그의 ‘재능기부 1호 벽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 뒤로 청주, 감포, 양산, 완주군 소양면, 부산 작은 도서관에 차례로 벽화를 그렸다.

“서울에서 몇 시간씩 걸리는 지방에 내려가 돈도 받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건,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에요. 그냥 제가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웃음).”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첫발을 내딛기 시작할 무렵인 2007년부터 재능기부를 해왔다. 코오롱그룹에서 “티셔츠 판매 수익금 전액을 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에 기부할 예정이니 그림을 기부해주면 좋겠다”고 부탁한 것이 시작이었다. ‘기부’라는 말에 그는 흔쾌히 응했다.

그 인연으로 사랑의연탄나눔운동본부와는 벌써 5년째 함께하며 계간으로 발행되는 소식지를 비롯해 여러 가지 홍보물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주고 있다. 어린이재단, 러빙핸즈, 월드비전 등의 국제 구호 단체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러빙핸즈의 주선으로 지난해에는 네팔에 다녀왔다. 올해에도 네팔, 아프리카 일정이 잡혀 있다.

벽화 그리기 외에도 강연·저작권 기부·행사 참여 등을 포함, 그가 지금까지 한 재능기부는 모두 92건에 달한다(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한 덕분에 문서 작업에 능한 그는 지금까지의 활동들을 빠짐없이 파일로 정리해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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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모든 요청에 응하지는 않아요. 제 그림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분들과는 즐겁게, 오랫동안 관계를 이어가는 반면 ‘공짜니까 누가 해줘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는 정중히 거절을 합니다.”

 

벽화로big그는 요즘 벽화로 마을 분위기를 바꾸는 ‘은평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은평구 구산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이미 그 효과가 검증된 벽화를 지역 전체로 확대하는 작업이다. 은평구 평생학습관과 연계해 관내 기관, 단체, 사무실 등 어느 곳이든 신청만 하면 벽화를 그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직접 그리는 방법 대신 ‘지도’를 택한 것은 사용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벽화를 직접 그리면 자신이 일하는, 혹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생깁니다. 그만큼 관리도 더 깨끗하게 이루어지고요. 그림을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직접 그려보게 함으로써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역할도 하지요. 따라서 벽화 작업은 그림에 대한 애정, 나아가 공간에 대한 애정을 찾아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가깝게 느끼는 미술 동호인구가 그만큼 늘어나면 그림으로 먹고사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잖아요. 그러니 재능기부는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도 주고, 스스로도 즐거우니 얼마나 폼나는 인생이냐”며 웃었다. “어차피 떼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니 이런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재능기부를 하기 전까지는 제가 마치 ‘성능 좋은 프린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재능기부를 하면서 제 그림과 저를 존중해주는 많은 분들을 만나면서 인생이 더욱 풍요로워진 느낌이에요.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이 필수가 된 것처럼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공익적인 활동을 병행해야만 자신의 일에 대한 가치가 올라가고, 지속가능한 기반이 됩니다. 재능기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죠.”

 

사회와

처음 벽화 그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1백개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목표 달성이 멀지 않은 지금, 그는 ‘소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더 큰 비전을 세웠다. ‘소셜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사회와 소통하고, 기여하겠다는 뜻을 담아 직접 만든 용어다.

“공익적인 활동에 홍보대사를 맡거나 봉사를 하거나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연예인들을 ‘소셜 엔터테이너’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까 공공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일상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체험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글ㆍ최선희 객원기자 / 사진ㆍ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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