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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감독 ‘적성 농구’… “올 시즌 감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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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지난 10시즌 동안 정규리그 최고 성적이 2007~2008시즌의 5위였다. 당시 상위 6개 팀이 겨루는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 1회전을 통과하지 못했다. 유일한 챔피언전 우승은 2000년이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도 19승35패로 9위에 그쳤다.

이번은 다르다. 개막전에서 인천 전자랜드에 1점 차이로 역전패 해 불안감을 드리웠지만, 곧바로 5연승하며 신바람을 냈다. 지난 시즌 챔피언 안양 인삼공사에 4점 차이로 덜미를 잡히고 난 다음에도 4연승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먼저 10승을 거둔 팀도 SK였다.

여기엔 문경은(41) 감독의 리더십이 있었다. 문 감독은 지난 시즌 감독 대행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연세대 90학번인 그는 1990년대 학번 중에선 가장 먼저 프로 감독이 됐다. 기쁨만큼이나 부담도 컸다. 앞서 SK를 거쳐 간 이상윤, 김태환, 김진, 신선우 감독이 모두 성공하지 못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 감독은 선수로는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연세대 시절 이상민(현 삼성 코치), 우지원(현 SBS ESPN 해설위원) 등과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다. 1993~1994 농구대잔치에선 사상 첫 대학팀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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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을 닮은 외모에 폭발적인 3점슛을 갖춰 ‘람보 슈터’로 불렸다. 프로 무대에선 삼성과 전자랜드를 거쳐 SK에서 프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고, 코치 생활도 같은 팀에서 시작했다. 감독 대행을 맡으면서 친근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선수들을 이끌었다.

현역으로 뛸 때 주장을 오래 맡아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기엔 제격이었다. 하지만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조직력보다는 개인 위주의 농구를 하는 SK의 약점을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선수들이 경기를 잘 풀어가다가도 후반전에 무너지곤 했습니다. 나중엔 개인득점에 더 신경을 쓰더군요. 모래알이었습니다”라고 SK의 약점을 지적했다.

문 감독은 대행이라는 꼬리표를 뗀 올해 본격적으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선수들에게 위기의식을 주입시켰습니다. 전지훈련 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선수들을 다그쳤습니다. 시즌이 임박해선 사기를 살려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죠.”

문 감독은 선수들에게 소통을 강조했다. ‘조식(朝食) 자유투 1백 개’도 그 일환이었다. 그는 선수들에게 매일 아침 자유투 1백 개씩을 던지고 함께 밥을 먹도록 한다.

“서로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라는 취지였습니다. 자유투를 던지면서 얘기도 나누고 기본기도 다지라는 거였죠.” 선수들 간의 대화는 식당에서 함께 아침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지방 경기를 하고 새벽에 숙소로 돌아오는 경우만 아침 자유투를 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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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감독은 또 전술적인 측면에서 예전보다 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특기를 살리는 이른바 ‘적성농구’를 내세웠다. 문 감독은 1가드-4포워드 작전을 들고 나왔다. 슈팅 가드였던 김선형을 코트의 사령관 격인 포인트 가드로 변신시켰다. 김선형이 공을 오래 가지고 플레이하는 것을 좋아해 아예 포인트 가드를 맡겼다. 포워드 4명은 최부경, 박상오, 김민수, 외국인 선수 애런 헤인즈가 맡는다. 센터인 크리스 알렉산더(2미터13)는 경기당 11분쯤을 뛰는 벤치 멤버다.

5문 감독이 ‘힘 좋은 소’에 비유하는 SK의 포워드진은 기동력과 포스트 플레이, 중거리슛 능력을 고르게 갖추고 상대팀들을 몰아붙인다. 신인 최부경(키 2미터·몸무게 1백4킬로그램)은 저돌적인 스타일이 돋보인다. 문 감독은 올 초 신인 드래프트 때 전체 2순위로 주저 없이 최부경을 뽑았다. 최부경의 현재 성적은 평균 8.9득점, 6.2리바운드, 2.0어시스트. 신인 중에선 최고 수준이다.

KT에서 영입한 박상오도 최부경처럼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2010~2011시즌 정규리그 MVP(최우수선수)를 수상했던 그는 팀에서 가장 많은 3점슛을 터뜨리며 공격에서도 활력을 불어넣는다. 문 감독은 “조직력이 좋은 팀에서 경험을 쌓은 박상오는 우리 팀에 와서도 양념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감독은 공격 성향이 강한 김민수의 장점도 살려가고 있다.

아르헨티나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김민수는 공격 성향이 강한 대신 일대일 수비가 약한 편이었다. 문 감독은 김민수에게 “도움수비, 변칙수비를 할 때만 잘 움직여달라. 상대 선수에게 돌파는 허용하지 말라”는 식의 단순한 주문을 했다. 대신 공격을 할 땐 평소 선호하는 중거리슛도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던질 수 있도록 허락했다.

문 감독은 선수들의 출전시간도 노련하게 안배한다. SK 주전 다섯 명의 평균 출전시간은 28~29분. 주희정, 김효범, 변기훈 등 다른 팀에 가면 주전으로 뛸 만한 선수가 10~15분 안팎을 뛰며 뒤를 받친다.

문 감독은 연세대 시절 최희암 감독에게 분업 농구를 배웠다. 당시 문 감독은 동료의 패스를 받아 슛을 꽂는 능력을 극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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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감독은 프로 무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른 감독들의 전술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문 감독은 또 SK 코치로 신선우 감독을 보좌하면서 각 팀 선수들의 특성을 철저히 분석하는 눈을 키워나갔다.

문 감독은 “시즌 전에는 라운드별로 5승(4패)만 해서 6강에 나가는 것이 목표였다”면서 “현재 예상보다 성적이 좋은데, 연패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문 감독 스스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는 “SK는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다. 이젠 선수들이 ‘우린 강팀’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놀라운 변화다”라고 말했다.

문 감독이 정식 감독 데뷔 시즌을 얼마나 화려하게 장식할지 관심이 쏠린다.

글·성진혁 (조선일보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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