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던가. '골프 여제' 박인비(27)에게 올 시즌은 바로 추석과 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6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대회 3연패를 이뤘다. 8월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오픈에서는 정상에 오르며 아시아인 최초로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타이틀을 여러 해에 걸쳐 모두 획득)을 완성했다. 8월 말 현재 시즌 4승을 거두며 상금, 올해의 선수, 평균 타수 부문에서 모두 1위를 달려 한국인 선수 최초로 3관왕 등극의 가능성을 높였다.

▷2013년 에비앙 챔피언십 대회를 앞두고 박인비가 가족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 박건규 씨, 박인비, 남편 남기협 씨, 어머니 김성자 씨, 동생 박인아 씨(왼쪽부터).
필드에서 풍성한 결실을 거두고 있는 박인비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는 대회 출전 대신 국내에 머물며 모처럼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됐다. "우린 대가족이라 어려서부터 설, 추석, 제사 때는 친척만 해도 수십 명이 모였어요. 갈비찜, 홍어찜, 토란국, 생선, 전, 나물 같은 음식 장만을 도울 거예요. 송편도 빚어야 하는데…. 솜씨가 부족해 내가 빚어놓으면 엄마는 송편이 아니라 만두 같다고 놀리셔요." 올 추석은 박인비가 지난해 스윙 코치이자 연인이던 남기협 씨(34)와 결혼한 뒤 처음 맞는 명절이기도 하다. 박인비의 시댁은 경북 경주다.
늘 가족의 소중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는 박인비가 처음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된 건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970년 골프를 시작한 조부 박병준(83) 씨는 평소 아들, 며느리에 손주까지 3대(代)가 골프장에서 함께 운동했으면 하는 바람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런 영향으로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54) 씨와 어머니 김성자(52) 씨도 골프를 하게 됐다. 박인비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8년 박세리가 처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다음 날 아버지 손에 이끌려 골프연습장을 찾았다. 박인비는 "엄마는 임신 8개월 때까지 골프를 치다 나를 낳았다고 하더라. 모태 골퍼의 피를 물려받은 것 같다. 할머니는 바느질을 잘하시는데 손재주를 물려주셨다"며 웃었다.
집안의 전폭적인 후원 속에 초등학교 시절부터 국내 대회 우승을 휩쓸던 박인비는 용인 죽전중학교 1학년이던 2001년 어머니, 두 살 터울 여동생(박인아 씨)과 미국 유학을 떠났다. 조기유학을 떠난 이유에 대해 박인비는 "한국에선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힘들었다. 골프 선수로 성장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박인비는 한국인이 전혀 살지 않는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소도시에 정착했다. "영어를 빨리 늘게 하려고 엄마는 한국 드라마를 전혀 못 보게 하셨죠. 저녁때는 학교 선생님이 집으로 오셔서 과외도 해주셨어요." 미국 주니어 무대에서 수십 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하던 박인비는 어머니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고 했다. "대학 산악반 출신으로 암벽 등반도 자주 한 엄마는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스타일이세요. 그래서인지 나도 신중한 성격을 갖게 됐어요. 엄마는 '넌 자랑스러운 내 딸이다. 골프가 널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해주셨어요."

▷엄마는 “넌 자랑스러운 내 딸이다. 골프가 널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해주셨다.
2007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을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프로 세계의 벽은 높았다. 4년 가까이 LPGA 투어에서 무관에 그치면서 골프를 아예 그만둘 기로에 섰다. 박인비는 "엄마에게 왜 골프를 가르쳐 이리 힘들게 하느냐고 원망했다. 너무 불행하고 비참한 느낌이 들던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린 그가 고교 시절부터 알게 돼 남자 친구로 발전한 남기협 씨와 해외 투어 생활을 같이하면서 재기에 성공한 것은 널리 알려진 얘기다. 박인비는 "엄마나 아빠 입장에서 다 큰 딸이 결혼도 하기 전에 남자와 같이 외국 대회를 다닌다고 하니 처음엔 황당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지나친 간섭보다는 한발 물러나주셨다. 내 입장을 헤아려줘 허락해주고, 결혼에 앞서 약혼식까지 주선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말했다.
박인비가 인터뷰 때마다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가족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는 고마움의 표시다. 그래서 가족 친지가 한자리에 모이는 이번 추석을 더욱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한가위 보름달이 뜨면 어떤 소원을 빌까. "지난 연말 암 수술을 받은 할아버지를 비롯해 온 가족의 건강과 평안이 우선이다. 내 골프는 그다음이다."
글 · 김종석 (동아일보 기자)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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