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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이 아니라 ‘림진강’이라 해야 느낌이 온다. 림진강이라 발음하기 위해 입 속에서 혀를 차는 순간, 찡하다. 박세영이 시를 쓰고 고종환이 곡을 붙인 ‘임진강’은 노래한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황헌만(63·M2 스튜디오 대표)이 “임진강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은 사진가로서의 내 꿈”이라고 했을 때 이 노래가 귓가를 스친다.



“사진가로서 갖춰야 할 사명감, 내 나이 60을 넘어서면서 갖는 나의 화두, 이 땅을 본 감동을 황헌만 식으로 기록하여 전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황헌만은 한마디로 ‘다 되는’ 사진가다. 그는 스트레이트 사건 사진부터 스튜디오 요리사진까지 삼십여 년 전방위로 한국 사진판을 누벼왔다. 그가 이룩한 사진 아카이브는 한반도의 자연과 역사를 두루 꿰고 있다. 그런 그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몸 바치듯 전력투구한 땅이 임진강이다.




왜 임진강이었을까, 싶었던 질문에 대한 답이 소설가 박태순(국토학교 교장)의 글에 담겨 있다. ‘냉전언어의 임진강에서 미래언어의 임진강으로’라 할까.

“황헌만 사진의 기억은 ‘오래된 미래’를 갈무리한다. 특히 이번의 그의 임진강 사진은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살아남게 될 것에 틀림없는데 그 사진담론 세계가 참으로 장구하면서 동시에 광대하기 때문이다… 마한-진한-변한의 삼한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및 중국 당나라와의 쟁패 시대를 거쳐 고려-조선시대, 그리고 한말 의병전쟁 시대에서 8·15 해방공간의 국토분단 시대에 이르기까지 임진강의 산하는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는데, 황헌만 사진의 기억은 이러한 파도와 물결의 만장(萬丈)을 들추어내고 있다.”



벽에 걸린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림일까, 사진일까.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이 아련한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 같다. 푸른 산들이 서로 몸을 포개며 물들어 가는 모습은 수인(水印) 목판화를 떠오르게 한다. 이미 사진이란 장르를 넘어선 그 풍경 앞에서 관람객들은 잠시 읍한다. 임진강의 풍경, 자연, 사람, 시간, 공간을 담은 사진은 건강하면서도 신비롭고 단단하면서도 애처롭다.

남북을 소통하는 강이면서 남과 북을 갈라놓은 경계의 강이 지닌 숙명을 황헌만은 담담한 기록이자 애끓는 이야기의 두 겹 결을 지닌 사진으로 풀어놓았다. 황헌만의 사진은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 하리라”는 이 땅의 꿈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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