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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즘, 위아래 하얀 모시 한복을 입고 왕골로 짠 돗자리인 화문석을 독차지하고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던 할아버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깃불의 하얀 연기가 밤하늘을 수놓을 때 온 가족이 화문석에 둘러앉아 시원한 수박을 쪼개 먹으며 더위를 잊곤 했다. 가슬가슬하고 뽀송뽀송한 화문석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나는 “오늘 밤 여기서 잘 거야”라며 투정을 부리다 “에끼 이놈, 버르장머리하고는~” 이라며 할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듣던 때가 떠오른다. 옛날 화문석은 그만큼 귀한 대접을 받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싸구려 나일론·대나무를 갈라서 만든 돗자리, 카펫 등이 우리 마루를 점령하면서 화문석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

강화에서 20여 년 간 줄곧 화문석을 짜고 있는 박정원(여·59) 씨. 그는 “우리의 생활문화가 바뀌어서인지 화문석 인기가 시들해졌어” 라며 고드랫돌을 앞뒤로 움직이며 돗자리를 매고 있었다.

화문석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은 우리 생활문화가 서양식으로 바뀐 탓이다. 하지만 카펫은 자칫 알레르기, 진드기의 온상이 될 수 있다.


[SET_IMAGE]2,original,left[/SET_IMAGE]소파·카펫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이에 비해 우리 화문석은 왕골을 말려 옷감을 짜듯이 만들어진 친환경적 생활용품이다. 봉황·태극·꽃 모양 등 다양한 무늬를 수놓아 장식용으로도 품격이 뛰어나 인공섬유로 만든 카펫과는 태생적으로 근본이 다르다.

박씨는 “강화 화문석은 건강을 잃기 쉬운 여름철에 보약과 같은 존재야. 하나 장만하면 튼튼해서 대대로 물려 쓸 수 있을 정도” 라며 “중국산과 비교해서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하지마. 한 땀 한 땀 자리를 매는 정성과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것이 바로 강화 화문석”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화문석의 시작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 중엽부터 가내 수공업으로 이어져 내려왔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또한 100여 년 전 강화군 송해면 양오리에 살던 한충교 옹이 조선왕실로부터 화문석의 문양을 연구하라는 하명을 받았다.

몇 년에 걸친 그의 연구로 염색을 한 왕골로 봉황, 용, 거북이 등을 산수화처럼 화문석에 그려 넣는 방법을 완성했다. 이후 강화 화문석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그 맥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왕골 자체가 시원하면서 습기를 잘 머금어 여름철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는 데엔 그만이다.

볕 좋은 날이면 금방 습기를 뿜어내는 자연친화적인 여름철 깔개로 우리 삶 깊숙이 자리를 잡았다. 오래 사용할수록 윤기가 나고 부스러짐이 없어 대를 이어 쓰는 것이 강화 화문석이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강화 화문석을 깔고 누워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는 호사를 누려볼거나.                

 글 사진 한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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