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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_IMAGE]2,original,center[/SET_IMAGE] [SET_IMAGE]3,original,center[/SET_IMAGE] 가을은 언제나 고추잠자리를 앞세우고 왔다. 빨랫줄을 받치는 긴 작대기 끝이나 울타리 꼭대기에 한 두 마리씩 머무르던 고추잠자리가 떼 지어 손에 잡힐 듯 낮게 떠다닐 때쯤이면 가을이 어느새 담장 옆 늙은 호박 위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름 내내 달콤한 향기로 동네 꼬마들의 애를 태우던 참외밭 한켠에서는 채 자라지 못한 찌그렁이들이 한풀 꺾인 햇살 속에서 뒤늦게나마 황금빛으로 영글어 간다. 비탈길 옆 화전으로 일군 밭에서는 참깨들이 미처 사람 손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듯 ‘톡톡’ 소리를 내며 알맹이를 터트렸다. 가을은 황색, 갈색 외에 빨간색으로도 왔다. 핏빛 고운 단풍이야 아직 얼마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지만, 돼지우리 낮은 지붕 위나 사람 발길 드문 마당 한편에는 으레 빨간 고추가 검붉은 색을 더하고 있었다. 이때가 되면 아이들에게는 여름내 낀 눅눅한 습기를 말리기 위해 내건 이불 사이를 헤집으며 따사로움과 포근함을 만끽하는 것이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SET_IMAGE]4,original,center[/SET_IMAGE] 그러나 고양이 손마저 빌려야 할 농촌의 가을은 천둥벌거숭이로 뛰놀던 아이들의 작은 손도 그냥 놀려 두지 않았다. 바구니며 다래끼를 들고 온종일 고추밭으로, 깨밭으로 이끌려 다니며 일손을 도와야 했다. 그런 날이면 아이는 고봉으로 올라온 햅쌀밥 한 공기를 앞에 두고 저녁 밥상머리에서 제법 큰 일꾼처럼 거들먹거리기 일쑤였다. 그 같잖은 ‘꼴값’도 어른들은 한바탕 너털웃음으로 받아넘겼다. 굳이 아이의 큰 ‘체’가 아니어도 이때쯤이면 어른들의 얼굴에는 환하게 웃음꽃이 피어오르게 마련이었다. 그렇게 어른들의 미소가 익어 갈수록 아이들은 달력을 보지 않고도 추석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을의 풍성함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먼저 넉넉함을 안겨주었다. 그 가을을 각박해진 지금의 도시인들 가슴속에 옮겨 심을 수는 없을까? [RIGHT]사진·권태균 / 글·이항복[/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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