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판소리 열풍의 중심에 젊은 소리꾼 이자람(33)이 있다. 이자람이라는 이름이 아직 낯선가. ‘예솔이 이자람’ 하면 무릎을 칠 것이다. “예솔아~ 할아버지께서 부르셔” 하면 “예!” 하고 달려가던 여섯살 이자람 말이다. 또 이건 어떤가. 1970년대 혼성 포크 듀오 ‘버블껌’이 부르던 노래 ‘연가’와 ‘짝사랑’. 이 혼성 듀엣 멤버인 이대규, 조연구씨가 바로 이자람의 부모다. 그 이자람이 어느덧 30대가 되어 판소리 분야에서 자기만의 길을 탄탄하게 구축해 가고 있다.
<억척가>는 이자람이 쓰고, 이자람이 노래하고, 이자람이 음악감독을 맡은 ‘이자람표 판소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원작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을 원안으로 해서 만들되, 배경과 스토리는 사뭇 다르다. 브레히트의 원작은 유럽의 30년 종교전쟁이 배경이지만, <억척가>의 배경은 중국 삼국시대다. 전쟁을 소재로 한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의 배경을 차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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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다른 것은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이다. 브레히트의 원작은 비극에 뿌리를 두고 온갖 물음표로 수렴되는 부조리극이었다면, 이자람의 <억척가>는 극한의 비극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나가면서 “그래도 삶은 위대하다”고 긍정한다.
소리꾼 이자람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2007년에 이자람이 대본, 작창(作唱), 연기의 1인 3역을 맡은 창작 판소리 <사천가>와 이자람이 주인공과 음악감독을 맡은 뮤지컬 <서편제>도 호평을 받으며 롱런 중이다. <사천가>는 매년 전국 순회공연이 이어지고, <서편제> 역시 2010년 초연 이후 장기 공연 중이다.
<사천가> 초연 때만 해도 창작 판소리의 흥행을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중의 눈에 이자람은 ‘사라져가는 판소리의 명맥을 힘겹게 이어가는 젊은 소리꾼’으로 비쳤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자람이 서는 무대마다 20~30대 젊은 관객이 몰리고, 공연이 끝나면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환호와 함께 기립 박수가 이어진다. “이자람!”을 연호하는 극성팬도 상당수다. “판소리라는 장르를 통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과 소통하고 싶다”던 이자람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 공연을 보신 분들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이자람이 30년 동안 판소리를 버리지 않으려고 정말 애를 썼구나’라고요.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제가 오히려 판소리 덕을 많이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이 몰락했다고 생각해서 안 배운 부분을 저는 운이
좋아서 일찍 배웠고, 그 결과 판소리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됐잖아요. 판소리를 몰랐던 사람들이 저를 통해 판소리의 매력을 알게 됐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뮤지컬 <서편제>의 이지나 연출님이 그러셨어요. ‘이 공연을 본 관객이 판소리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어라고 가볍게 한마디 던질 수 있다면 우리는 성공한 거야’라고요. 그런 말씀들이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리거든요. 감격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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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은 세대 간의 벽을 허무는 소리꾼이다. 판소리를 ‘옛것’으로 치부해 담을 쌓고 아예 들어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가 판소리의 매력에 푹 빠지게 한다. 스스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시도로 만들었다”는 표현을 싫어한다고 했지만, 그는 젊은 대중의 기호를 예리하게 읽어낸다. 그리고 견고하게 쌓아둔 담을 대중 스스로 허물게 만들다. 그것도 서서히.
그가 만든 <사천가>는 소리꾼의 구성진 가락과 둥둥 북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추임새 등 판소리 고유의 요소는 굳건히 지키되, 다양한 양악기를 동원하고 젊은 소리꾼들과 함께 무대를 휘저으며 신명을 덧댄다. 판소리의 신명나는 장단과 서양의 리듬악기·타악기의 연주가 어우러지면서 이야기에 재미와 속도감이 붙는다.
뮤지컬 <서편제>에서는 처음부터 정통 판소리를 하지 않는다. 관객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접점을 찾아내고, 그 접점에서 관객의 손을 이끌고 판소리 고유의 영역으로 서서히 들어간다. 관객은 극중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되면서 판소리 자체에 빠져들게 된다.
이자람은 ‘퓨전 판소리’, ‘전통 판소리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한다. 그에게 추구하는 소리의 세계를 묻자 “제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에요”라며 진지하게 답한다.
“판소리를 통째로 전통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판소리는 하나의 장르지 전통음악이 아니에요.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등 예부터 내려오는 판소리를 전통 판소리라고 하는 거죠. 제가 만든 <사천가>나 <억척가> 같은 창작 판소리는 그냥 판소리예요. 21세기에 나올 법한 판소리 말이에요.
1백 년이 지난 후에도 살아남는다면 후대인들이 전통 판소리라고 하겠죠. 문화재법 제정 이후 5개의 판소리만 남고 다른 판소리는 다 소멸했어요. 그 다양한 판소리 작품이 만들어지던 정신이나 시대를 보던 눈, 노래를 보던 안목은 사라지고 작품만 남은 거죠.
저는 판소리라는 장르의 힘을 다시 살리고 싶어요. 귀도 즐겁고 눈도 즐겁고 마음이 시원해지는 판소리의 힘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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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은 공연마다 이번이 마지막인 듯 혼신의 연기를 펼친다. 저렇게 펑펑 울어서 어떻게 연기를 하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뒤범벅된 채 연기를 한다. 때론 반달 눈매로 해맑게 웃고, 때론 처진 눈매로 세상살이를 탄식하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판소리를 위한 얼굴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의 연기를 본 관객들은 “판소리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다”, “판소리가 지루하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한 방에 날려보냈다”는 평을 한다.
이자람표 판소리는 국경을 넘어 해외에서도 통한다. 이자람은 <사천가>로 2010년 폴란드 콘탁 국제연극제에 공식 초청돼 최고여배우상을 수상했고,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월드뮤직페스티벌과 위싱턴 페스티벌에도 초청됐다. 2011년에는 파리 리옹극장과 프랑스 민중극장에서 <사천가>를 공연했다.
올해에도 해외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이자람은 올 7월 런던 한국문화축제에서 <사천가>를, 11월 파리 민중극장과 루마니아 ‘Hungarian theatre of Cluj’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억척가>를 공연할 예정이다.
글·김민희 (톱클래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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