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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호암상 사회봉사상 받는 이동한 춘강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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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바람만 불어도 균형을 잃고 넘어져 온몸의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그를 ‘절름발이’라고 놀리곤 했다. 없는 살림에 서울의 큰 병원에서 열여섯 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다리는 나아지지 않았다. 아들을 아프게 바라보던 어머니는 ‘나 없이도 아들이 혼자 살 수 있는 길’을 열심히 모색했고, 병실의 소년은 ‘나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기쁘게 할 방법’을 찾아 골몰했다.

모자(母子)가 공통적으로 찾아낸 해답은 신체적 결함을 보완하고 장애를 뛰어넘을 기술을 갖는 것이었다. 소년은 어머니의 권유로 열여덟 살의 나이에 수도계량기와 택시미터기를 다루는 계량기사자격증 시험에 도전했고, 제주 지역 1호 계량기사가 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제주 지역 최초의 조경 사업과 웨딩 사업을 벌여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수익금의 일부를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데 투자했다. 장애인 재활 시설인 사회복지법인 춘강(春江)을 설립, 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리해 왔고 장애인들의 복지 증진에 앞장서온 것이다. 그 공로로 올해 호암상 사회봉사상(상금 3억원) 수상자로 선정됐다.

여전히 소년처럼 해맑은 얼굴의 이동한 제주도사회복지협의회회장 이야기다. 그는 “인생은 갈림길이건 막다른 길이건 스스로 선택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미로와 같다”며 자신의 인생여정을 들려줬다.





제주도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이 회장은 두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보조기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살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편모슬하에서 자라야 했다. 그는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을 어머니를 통해 실감하게 됐다”며 “내가 중증장애의 몸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셨어요. 없는 살림에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을 고쳐 보겠다고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죠. 뿐만 아니라 늘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서 김만덕봉사상을 수상했던 분입니다. 저는 어머니가 쌓은 인덕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는 중학교 입학 후 3년 동안 소아마비를 고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무려 열여섯 번의 수술을 받았다. 어머니는 아들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또한 거듭된 수술에도 차도가 없자 아들이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홀로 살아갈 길을 찾아 주었다. 제주도에 수도 계량기를 점검하고 시공하는 회사를 차려 놓고 아들이 계량기사 자격증을 따도록 독려한 것이다.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던 그는 밤낮으로 공부해 한 달 만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당시 제주도에서 계량기사자격증을 취득한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 덕분에 제주 지역 계량기 시장을 독점했다.





“자격증을 취득한 후 학업과 사업을 병행했어요. 수업 중에도 계량기를 점검할 일이 생기면 현장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제주도 유일의 계량기사라 선생님께서도 허락해 주셨지요. 그 덕분에 일찌감치 계량기 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몸이 불편하니 남보다 두배 세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그는 일꾼들보다 먼저 작업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그 습관이 몸에 배어 요즘도 새벽 5시면 눈이 저절로 떠진다고 한다.

계량기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70년대 후반 이 회장은 조경과 웨딩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초기에 자금 문제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두 사업체 역시 특유의 성실함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제주국제공항 조경을 담당할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27만1천74제곱미터(약 8만2천 평)에 이르는 메이즈랜드 부지는 원래 조경 사업을 위한 육묘장으로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미로공원으로 기네스북 에 등재 신청을 해 놓은 메이즈랜드는 지난해에 문을 열었다.

사업 확장과 더불어 제주 지역 최초의 지체장애자협회도 만들었다. 자신과 같은 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싶어서였다. 그가 본격적인 사회복지 사업에 뛰어든 것은 88올림픽 전인 1987년이었다. 일반 올림픽 후 치러지는 장애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장애인올림픽에 대비해 전국 시도에 장애인복지관을 하나씩 세우도록 했는데, 부지 마련 등 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제주 지역에서는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결국 제가 나서게 됐죠. 어머니가 저를 위해 모은 돈 8억여 원을 몽땅 출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설립한 것이 제주 지역 최초의 장애인 전문 사회복지법인 춘강이다. ‘춘강’은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의 법명이기도 하다.

 

춘강은 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근로센터, 직업재활시설, 재활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있는 장애인종합복지관은 제주도에 기부채납하고, 나머지 기관은 그가 직접 운영하고 있다.

“법인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제가 하는 일은 장애인들이 정상인처럼 살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희 법인에는 현재 장애 정도나 성별에 따른 맞춤형 근로센터와 직업훈련소가 갖추어져 있죠.”

춘강에는 여성 장애인을 위한 한복봉제 공장, 중복장애인을 위한 세탁소, 농아들을 위한 문틀창호 공장, 지체장애인을 위한 피혁공예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서 일하거나 훈련을 받는 장애인이 연간 40만명에 이른다.

그에게 “이번에 받게 될 상금을 어디에 쓸 거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한국은 이제 어느 정도 장애인 복지시설이 갖추어졌다고 봅니다. 이번 상금은 저개발 국가의 장애인들을 위해 쓰고 싶습니다. 테마공원 사업을 시작한 것도 아직 장애인 복지시설이 미미한 저개발국가를 지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서철인 기자 / 사진·서경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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