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감사하죠. 정년퇴직을 앞두고 이렇게 큰 상까지 받으니… 제가 좋아서 한 일인데 부끄럽기도 하고요.”
서담상 수상소감을 묻자 이영직(59) 소방장은 짤막하게 대답한 후 훈련 준비를 했다. 이 소방장은 6월이면 정년퇴직을 한다. 그렇다고 ‘말년병장쯤 되겠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는 3교대로 갓 임용된 초보 소방관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출근하면 차량정비와 소방장비 점검, 출동 신고가 적은 날에는 화재진압이나 인명구조 훈련을 실시한다. 인터뷰 당일에도 훈련이 있었다.
이순을 앞둔 나이에 초임소방관 같은 하루 일과가 피곤할 법도 한데 그는 쉬는 날을 반납하고 이발봉사와 급식봉사 등을 다니고 있다. 이는 그가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으로 사회에 귀감이 되는 자에게 주는 상인 ‘서담상’을 수상한 이유이기도 하다. 얼마 전 ‘비번’이었던 날에도 강남구 일원동 대청종합사회복지관 식당에 급식과 도시락 배달 봉사를 다녀왔다.
이 소방장의 봉사 영역은 경로당 청소, 급식봉사, 차량정비 등 다양하지만 그는 특히 ‘이발봉사하는 소방관’으로 유명하다.
“이발봉사는 20여 년 전 미용실을 운영하던 아내에게 이용기술을 배우면서부터였어요. 장애인 시설과 노인정에서 이발봉사를 하면서 봉사하는 즐거움을 느꼈지요. 그러다 봉사를 직업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늦은 나이에 소방관 시험에 응시했어요.”
그는 1992년 마흔이 되던 해에 늦깎이 소방관이 됐다. 봉사와 희생 없이는 수행하기 힘든 소방공무원. 그에게 소방관은 어려운 이웃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는 직업이었다.
“초임 소방관 시절 세곡동으로 급수 지원을 나갔다가 그곳에서 장애인들을 만난 후 다시 미용가위를 잡게 됐어요.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장애인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고 저도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었지요.”

![]()
이 소방장은 이후 휴무일에는 세곡동 참빛교회를 찾아가 이발봉사와 목욕봉사를 했다. 봉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실질적인 생활비 지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동료 소방관들에게 2천원씩 받고 이발을 해주기 시작했다. 동료 소방관들도 좋은 뜻에 동참하기 위해 그에게 기꺼이 ‘머리를 맡겼다’. 그는 이를 통해 매달 30만원 정도를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다.
또 그는 자택 근처를 돌며 폐품까지 수집해 팔아 도움이 필요한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을 위해 기부했다.
이 소방장의 이웃사랑 실천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봉사모임인 사단법인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연계해 지적장애인 30명과 금강산 등반도 다녀왔다. 소방서에서의 차량반장 특기를 살려 어르신들의 차량정비를 돕는가 하면 동네 경로잔치 사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강남 대청종합사회복지관 외에도 자택 부근 경로당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급식봉사와 이발봉사를 펼치고 있다. 관내 독거노인 다섯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봉사활동은 무슨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넓히는 일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도와준다는 의미보다는 이웃들의 말벗이 되고 이웃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이죠.” 이 소방장의 말이다.
쉬는 날도 반납하고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 소방장도 현재 그리 건강한 몸 상태는 아니다. 2004년 당시 눈길에 버스가 미끄러져 덮치는 큰 사고를 당했던 그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나 2년간의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그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히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이 소방장의 모습은 많은 동료와 선후배들을 봉사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
최응섭 강남소방서장을 비롯해 동료 소방관, 의용소방대원들이 함께 봉사반을 꾸려 꾸준히 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발봉사를 지속하기 위해 그는 후배에게 미용기술을 전수해 주기도 했다.
1992년 11월 소방관으로 임용돼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현장에서 구조활동 등을 펼쳤던 그는 이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
퇴직을 앞둔 심정을 묻자 그는 “20년간 소방관으로 근무하며 최소 6천 회는 출동한 것 같다”면서 “출동 나갈 때마다 ‘큰불이나 큰 사고가 아니어야 할 텐데’ 늘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지만 소방관으로서 20년 동안 몸담을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봉사에는 퇴직이 없다”면서 “퇴직 후에도 꾸준히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글·박근희 기자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