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지난해 1월 21일 전 국민은 긴급뉴스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전원이 우리 청해부대에 의해 구출됐다는 소식이었다. 전국은 환호의 도가니에 빠졌고 외신은 한국군의 작전수행 능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작전명 ‘아덴만 여명작전’이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은 우리 군의 뛰어난 작전수행능력이 근본 이유지만 언론의 전폭적인 협조도 무시할 수 없다. 언론은 국방부가 요청한 엠바고(Embargo·시한부 보도중지)를 이례적으로 충실하게 지켰고 그 결과 군사기밀이 유지돼 작전은 대성공으로 끝났다. 하지만 아덴만 여명작전 엠바고가 처음부터 끝까지 순탄하게 유지됐던 것은 아니다. 작전 하루 전날인 1월 20일 오전 11시에 한 지역신문이 ‘소말리아 해적과 교전, 해군 3명 부상’ 제목으로 단독 보도했고 이어서 한 중앙지와 인터넷 매체들이 추가로 보도대열에 합류했다. 엠바고가 깨진 것이다.
이때 국방부는 놀랄 만한 상황을 연출해냈다. 문제의 지역신문에 기사 삭제를 요청해 그 사이트에서 기사가 삭제됐고 인쇄된 신문은 배송이 중지됐다. 나머지 매체들에 대해서도 기사삭제를 요청해 이들 매체가 전폭적으로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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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에 기사가 실리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파급된다. 국방부가 깨진 엠바고를 다시 막지 못했으면 군사기밀이 유출돼 작전수행에 결정적인 지장을 초래했을 것이다. 비교적 엠바고가 잘 지켜진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깨진 엠바고를 살려내 다시 엠바고를 걸어 유지한 것은 더 대단한 일이다.
군사작전 못지않게 긴박감이 넘쳤던 국방부의 ‘아덴만 여명작전’
엠바고 성공 뒤에는 김민석(54) 대변인이 있었다. 그는 국방부 대변인이 되기 직전까지 중앙일보 군사전문기자로서 오랫동안 국방부를 출입한 터줏대감이었다. 국방부 출입기자의 ‘맏형’으로 출입기자들 사이에 신망이 두터웠던 그가 국익을 생각해달라며 호소하자 기자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언론을 통제한다는 것은 구 시대적 발상이다. 그만큼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매체도 많아져 통제 대신 호소할 수밖에 없고, 호소가 먹히는 것은 팩트(Fact·사실)와 신뢰밖에 없다. 팩트를 갖고 접근해도 그동안 쌓아놓은 신뢰가 없으면 이 또한 무용지물이다.
김민석 대변인은 오랫동안 팩트로써 승부했고 누구에게나 ‘이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얻었다. 그 결과가 아덴만 여명작전 엠바고 성공으로 나타난 것이다.
김민석 대변인은 역대 국방부 대변인 중 첫 민간인 출신이다. 그는 아덴만 여명작전을 비롯, 여러 상황에서 민간인 출신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가 임명된 것은 2010년 11월 29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2백여명의 기자가 연평도에 들어가 있던 비상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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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대변인이 된 그에게 정부의 첫 요구는 “기자들을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우리 군의 무기 반입, 피해내용 등이 여과 없이 보도되고 있어 군사기밀이 유출될 우려가 컸고 우리 군의 추가대응과 북한군의 추가도발로 인해 기자들의 인명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는 각 언론사에 협조요청을 하고 일일이 설득해서 3~4일 만에 취재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대신 기자들에게 우리 군이 연평도에서 추가 사격훈련을 할 때는 현장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고, 11월 25일 연평도 사격현장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약속을 지켰다. 이때 그는 기자들에게 군의 안전 관련 통제에 따르겠다는 서약서를 처음으로 받고 현장취재를 성사시켰는데 이 일은 언론의 군취재와 관련해서 가이드 라인을 마련하는 중요한 선례가 된다.
“1996년 강릉무장공비 사건 때 국방부 출입기자 중 일부가 작전구역에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취재하고 그것이 방송을 타는 바람에 우리 군의 작전이 노출된 사례가 있습니다. 저는 그때도 국방부 출입기자였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2월 국방부 수뇌부에 ‘군 비상사태시 취재 및 보도준칙’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흔쾌히 받아들여졌음은 물론이다. 국방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지난해 가을 시안이 완성됐다.
이에 앞서 지난해 7월 18일에는 국방부 출입기자·군공보관계관 합동 워크숍을 열어 기자들의 의견을 반영했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학계·언론계·군 관계자로 ‘가이드 라인 제정 자문단’을 구성해 지난해 8월 10일과 24일에 회의를 열었다. 이밖에 다수의 토론회와 출입언론사 편집·보도국장 초청 간담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사상 초유의 가이드 라인 제정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군사전문기자 출신이다. 울산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한국국방연구원에 입사했다. 1994년 중앙일보로 옮겨 군사전문기자로 활약했다.
대변인에 임명된 후 그는 출입기자들에게 두 가지 원칙을 선언했다. 하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또 하나는 “여러분이 오보(誤報)를 쓰도록 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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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원칙을 엄수했고 덕분에 지금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그가 “오보”라고 하면 잘 안 쓴다. 그도 비밀이 아니라면 웬만한 건 다 기자들에게 설명해준다.
요즘 그가 가장 신경쓰는 것은 제주해군기지 관련 홍보다. 그는 이번에도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 토요일이던 지난 3월 10일 그는 홍보담당과 함께 강정마을을 다녀왔다. “현장을 봐야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온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그는 해적기지 표현과 관련해 논란이 일자 “제주해군기지가 해적기지면 장병은 해적이고 천안함 46용사도 해적이냐?”고 되받아쳐 주목을 받았다.
그는 “민간인 국방부 대변인은 장점이 많아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국방부 대변인이 대부분 민간인”이라며 “앞으로도 민간인 국방부 대변인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훌륭한 선례를 남기겠다”고 말했다.
글·박영철 기자 / 사진·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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