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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극복한 스물세 살 청년 최준 씨




최준(23)씨는 ‘판소리 말아톤’으로 유명하다. 영화 <말아톤>의 실제 모델이 된 배형진씨가 ‘백만불짜리 다리’로 마라톤을 통해 발달장애를 극복했다면, 최준씨는 판소리와 음악을 통해 발달장애를 극복해 ‘판소리 말아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씨는 생후 30개월에 자폐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정확한 장애등급은 발달장애(자폐성 장애) 2급. 타인의 도움 없이는 혼자서 생활하기 어렵다. 겉으로 보기엔 장애가 느껴지지 않는 스물세 살 건장한 청년이지만, 정신연령은 아직 일곱 살 수준이다.


자폐성 장애는 낯선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는 게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람들에게 먼저 질문을 하고 말을 건네온다. 심지어 국립국악당, 남산 국악당 등에서 개인 판소리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수많은 공연 무대에 올랐다.

고등학생 때 이미 판소리 음반을 내는가 하면, ‘KBS국악한마당’ ‘전국국악대전’ ‘전국판소리경연대회’ ‘동랑청소년종합예술제 국악경연대회’ 등 굵직굵직한 판소리 경연대회에 나가 수상하는 등 그 실력도 인정받았다.

“20년 전 자폐 진단을 받았어요. 당시 의사가 ‘이 아이는 평생 이렇게 자기 세계에 갇혀 살 것’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우리 준이가 20년 만에 그 말을 뒤집었어요. 1~2년 전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고 차츰 낯선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준이나 가족들에겐 정말 기적 같은 일이지요.”

23년 동안 그림자처럼 그의 곁을 항상 지켜오고 있는 어머니 모현선(51)씨의 말이다. 모씨는 “자기 세계에 갇혀 있던 준이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것은 ‘판소리’와 ‘음악’이었다”고 말했다.

“판소리를 하면서 언어가 발달했어요. 명사만 겨우 나열하는 수준이었는데 배운 판소리 사설들을 일상생활에 차츰 활용하면서 일상 대화가 가능해졌어요. 이제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질문도 해요.”

어려서부터 유난히 특정 소리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던 최씨는 ‘절대음감의 소유자’로 평가받고 있다.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가 F음과 비슷하다는 것을 맞추고 한번 들은 곡은 음정, 박자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피아노로 연주해 낸다.

아버지 최정돈(55)씨는 “(준이의) 컨디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3분짜리 곡을 하나 작곡하는 데 채 3분이 안 걸릴 때도 있다”고 귀띔했다. 최준씨는 일상을 말로 얘기하고 글로 기록하는 대신, 그때그때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등을 일기처럼 작곡하는 것을 즐긴다.

오선지 위에는 그의 나날들이 빼곡하게 펼쳐져 있다.


‘축구경기를 바라보며’(2012년 2월 25일)는 얼마 전 열린 국가대표평가전을 관전하고 나서 작곡한 곡이다. 일종의 피아노로 표현한 관전평인 셈. ‘혼자서 목욕’(2012년 2월 29일)은 엄마의 도움 없이 혼자 목욕한 후의 기쁨을 담았다.

얼마 전 KBS <인간극장–아들아, 너의 세상을 들려줘> 편에 출연해 훈훈한 감동을 줬던 그는 ‘인간극장 왈츠’라는 곡으로 방송촬영 후기를 대신했다. 어려운 말보다는 쉬운 음악으로 더 많은 소통을 시도하고 있는 그다.

최씨는 6학년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개 발달장애아가 그렇듯 어린 최씨도 한 가지 음에만 집착해 하나의 건반만 치니 ‘피아노를 망가뜨린다’는 이유로 교습소에서 쫓겨나곤 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판소리와의 인연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됐다. “치료 목적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주기 위해 장구를 가르쳤는데 담당 선생님이 판소리 전공자라 자연스럽게 판소리를 접하게 됐다”는 게 모씨의 설명이다.

어려서부터 최준씨는 일반 아동들에 비해 발음은 부정확했지만 끈질긴 연습벌레로 통했다. “무엇보다 아들 스스로가 ‘소리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는 게 아버지 최정돈씨의 말이다.

‘판소리 전공’인 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현재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건반을 전공하고 있다. “발달장애가 있는 판소리 꿈나무에겐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다”는 게 어머니 모씨의 설명이다.

모씨는 “준이가 2008년 3월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운영하는 ‘예비실기학교’에 다니면서 판소리로 한예종 입학을 꿈꿨으나 당시엔 정원 외 특별전형 중 특수교육대상자 특별전형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마음을 접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차선의 선택으로 피아노를 전공하게 됐지만, 최씨는 판소리를 하는 피아노 전공자로서 ‘피아노 병창’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

피아노 반주와 판소리가 재즈처럼 불협화음인 듯 교묘하게 협화음을 내는 ‘피아노 병창’은 최씨가 앞으로 개척해야 할 장르이기도 하다.

어머니 모씨는 “준이가 10대 때 ‘판소리를 하는 발달장애아’로 주목받았다면, 20~30대는 다른 뮤지션들과 똑같이 음악적 재능만으로 인정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인터뷰 와중에도 최준씨는 이따금 연습실에 들어가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소리를 얹어 ‘적벽가’를 멋들어지게 뽑아냈다. 앞으로 뮤지션 최준씨가 오선지에 그려나갈 날들이 궁금해진다.

글·박근희 기자 / 사진·김잔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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