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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 출신 첫 1급 공무원 조명철 통일교육원 원장




요즘 통일부 통일교육원은 활력이 넘친다. 겹경사가 났기 때문이다. 우선 2012년 사업예산이 1백12억원에서 1백47억원으로 31퍼센트나 늘었다. 이는 정부 내 최고 수준의 증가율이다. 2012년 소요정원도 61명에서 65명으로 4명이나 늘었다. 통일교육원의 정원이 증가한 것은 1997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이 현상의 주역은 조명철 통일교육원장이다. 조명철 원장이 지난해 6월 8일 제21대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통일교육원은 교육역량과 전국적 기반 강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교육과학기술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 유관부처들은 통일교육원의 노력에 대해 전폭적 지지를 보냈고, 그 결과가 이번에 예산과 정원의 증가로 나타난 것이다.





그가 취임한 후 통일교육원은 큰 성과를 거뒀다. 그는 업무파악 후 문제점을 찾았다. “통일교육원이 하는 일이 너무 많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새로 제시한 추진방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찾아가는 맞춤형 통일교육’을 실시했다. 지난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평화통일대행진(7·26~30), 청소년 통일미래 글로벌 리더십 캠프(8·8~11), 통일용틀임 한마당(7·27), 통일콘서트(8·27) 등이 대표적 사례다. 성인 대상으로는 통일교육위원 지역협의회 및 지역통일교육센터 15회, 지역 통일관 8회 방문교육을 실시했다.

두번째는 ‘북한실상 및 안보교육 강화’다. 북한이탈주민 강사를 활용한 북한실상 교육을 체계적으로 강화했고 균형적 북한관을 정립하는 데 중점을 뒀다. 1주 이상 전 과정에 ‘북한이탈주민과의 대화’를 넣었다. 북한이탈주민 전문강사를 26명 양성하고, 북한이탈주민 1백70여 명으로 강사풀을 구성했다.

다음으로 ‘교육역량과 전국적 기반 강화’를 꾀했다. 특히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대폭 확대했다. 청소년 캠프를 2011년 5백명에서 올해는 5천명으로 열 배 늘렸다. 찾아가는 학교통일교육은 2010년 1백17개교에서 지난해 2백23개교로 늘렸고 올해는 5백개교가 목표다.

민간 유관기관과의 업무협조, 각계 전문가들과 의견교환을 통해 통일교육의 외연도 확대했다. 지난해 7월 6일 ‘사회 및 학교 통일교육 현황과 활성화 과제’를 주제로 통일교육 발전 심포지엄을 개최했고 7월 20일에는 한국교총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밖에 ‘통일대화의 광장’을 30회 개최하고 전문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우리 사회 최고위층을 대상으로 통일교육을 기획한 것도 눈길을 끈다. 오는 3월 2일부터 언론계·학계·기업·문화예술계·공공기관 등 CEO 39명을 대상으로 ‘통일정책 최고위 과정’을 개설한다. 조원장은 “이들이 여론 주도층이어서 우리 사회 전반으로 통일인식을 제고하고 통일논의를 확산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교육원의 변화는 실제 교육을 받은 수강생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대학에서 ‘북한의 이해’라는 과목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밝힌 한규철씨는 지난해 11월 15일 통일교육원 홈페이지에 “금년도 통일교육원의 교육개발과에서 매년 발간되는 <북한이해>, <통일문제이해> 책자를 교육원으로부터 지원받아 학생들에게 배부해 보조교육 자료로 사용했고 학생들로 하여금 북한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통일의지를 함양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고 감사글을 올렸다.

1급 공무원인 그가 지난해 임명됐을 때 웬만한 장·차관 임명보다 더 많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으로 통일교육원장이 된 첫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그가 취임할 당시 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야당 및 언론까지도 이번 정부의 가장 잘한 인사로 평가했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축하해 준 것에 송구스러우며 대단히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의 경력을 보면 ‘준비된 통일교육원장’ 소리를 들을 만하다. 그는 북한이탈주민 출신이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김일성대 교수를 지냈고 남한에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협력개발센터 소장을 지내 남북한을 두루 잘 알고 교육과 행정 경험이 풍부하다.

그가 보다 실효성 있는 통일교육을 할 것으로 기대받은 이유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 8개월간 전국을 뛰어다니면서 통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지난 2월 22일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통일교육원을 찾았을 때 홍보 담당자가 “원장님 컨디션이 안 좋으시니 인터뷰를 최대한 짧게 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통일교육원의 예산과 정원이 늘어난 데는 그가 정부 관계자들을 만나 통일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것도 작용했다.

그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월남자, 월북자를 통틀어 남북한에서 이탈주민 중 최고위직에 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저는 북한이탈주민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느냐를 대한민국 내 북한이탈주민와 북한의 2천만 주민이 보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연말 북한의 급변으로 통일의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면서 “통일교육의 중요성이 더 높아진 만큼 남북한 주민과 해외동포들이 서로 공감하고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통일교육의 내실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글·박영철 기자 / 사진·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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