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선생님, 지금 설명한 게 2가 6번 곱해진다는 뜻 아니에요?”
8개의 책상이 놓인 아담한 교실에서 김명자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생님에게 묻는다. “지수법칙은 공식의 특징을 잘 살펴보고 문제를 푸셔야 합니다.”
선생님은 칠판에 ‘2×2×2×2×2×2’라고 써 보였다. 그제야 김씨는 “그렇게 써 주시니 이제 알겠네요”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학생이 양복 차림을 한 중년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많아 보인다.
여느 교실 못지않게 진지하게 수학 수업을 하고 있는 이곳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고등동 ‘수원 푸른빛 평생학교’ 야학교실이다.
이곳의 선생님이 바로 공석성 주무관이다.
1990년 공직에 입문해 현재 경기도의회 총무담당관실에서 근무하는 공 주무관은 지난 2008년 10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야간학교인 푸른빛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월급도, 수고비도 나오지 않는 무료 봉사지만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져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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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주무관이 이곳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당시 푸른빛 학교에서 야학교사로 일하던 동료의 권유 때문이었다. 야학에서 수학 과목은 대부분 인근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가르쳤는데, 군 입대 등으로 자주 결원이 생겨 안정적인 교사 확보가 절실했다.
한양대학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고, 학교와 걸어서 10분 거리인 도청에서 근무하는 그가 수학 교사로는 적임자였다. 동료의 부탁에 그는 흔쾌히 야학교사 일을 맡았다. 그는 “뭐 별다른 사명감도 아니고, 그냥 좋은 일 한번 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덤덤히 말했다.
야학에서 그가 처음 맡은 과목은 수학이 아닌 과학이었다. 공학전공자였지만 수십년 만에 다시 책을 펼쳐본 터라 첫 수업부터 쉽지 않았다.
더구나 과학은 하나의 과목이 아니라 지구과학, 일반과학, 물리, 화학 등 다양한 분야가 섞여있어 외워야 할 내용도 많았다. 특히 지구과학은 화강암·편마암 등 암석의 종류와 특징을 외우느라 며칠 밤을 새워야 했다.
“첫 수업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하루 7~8시간씩 참고서와 인터넷을 뒤지며 준비를 했는데 수업 전날에는 너무 긴장해 잠까지 설쳤죠.”
하지만 공 주무관은 “태양계 행성에 대해 설명하는 수업에서 2명의 학생이 우주에 관한 내용에 신기해하며 집중하는 모습에 짜릿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2개월 뒤부터는 과학과 수학을 함께 맡아 일주일에 4시간씩 강의를 했다. 그러나 직장 일과 수업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6개월째부터는 일주일에 2차례 수학만 담당하고 있다.
수업을 위해 책을 보는 일이 잦아지고 귀가가 늦어지면서 처음에는 가족들이 의심을 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그가 하는 일을 알고난 후부터는 둘도 없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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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4명의 학생이 있는 푸른빛 학교 야학반은 늦은 나이에 공부하기를 원하는 40~60대 만학도들의 배움터다. 지금까지 30여 명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자가 많아지니 기억에 남는 제자도 많다.
“한번은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30대 후반 주부가 기초를 다지겠다고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미 고입 검정고시를 합격한 분이라 중학교 과정 수업에서 매번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곤 했지요. 제가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이휘수(49) 푸른빛 학교 교장도 공 주무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공 선생님은 8명의 야학교사들 중 가장 나이가 많지만 늘 묵묵히 진심으로 가르치시는 분입니다. 한 번은 충청도로 지방출장을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수업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저녁 늦게 학교로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께서 ‘지금 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열정 덕분에 공 주무관은 학생들 사이에서 큰 믿음을 주고있다.
“한 교실에 학생이 5~6명이 전부이지만 대부분 40대를 넘긴 고학생들인 데다 각자 직업을 갖고 있어 수업시간을 바꾸기 어려워요. 게다가 중학교 과정을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모두 가르쳐야 하는데, 한 번이라도 수업을 거르면 학생들이 진도를 따라오지 못하지요.”
공 주무관은 “학생들과의 시간을 지키는 것 또한 선생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손사레를 쳤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과 명절이나 연말이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그게 강의를 이어 가는 데 큰 힘이자 보람이다.
매일 새벽 4시부터 교회 관리 일을 한다는 류화주씨는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야학에 나와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한다”며 “이해할 때까지 자상하게 가르쳐 주는 공 선생님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일하는 김명자씨도 “고된 일을 마치고 나면 하루쯤 야학에 빠지고 싶다가도 아무 대가 없이 열심히 가르치는 공 선생님이 떠올라 교실로 오게 된다”며 공 주무관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공 주무관은 “가르치기 위해 야학에 오지만 40~60대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니, 오히려 내가 세상 살아가는 이치를 배운다”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푸른빛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양희동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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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