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아이스 카페라떼 한 잔, 카푸치노 한 잔이요.” 커피를 주문하자 한 직원은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커피를 내리고 또 다른 직원은 잔에 얼음을 담은 후 우유를 따른다. 흘리거나 넘치는 것 없이 정확하게 따라 놓은 우유에 커피 원액을 넣고 뚜껑까지 덮어 카페라떼 한 잔을 낸다. 뜨거운 스팀을 이용해 풍부한 거품을 만들어야 하는 카푸치노도 이내 뚝딱이다.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라고 해서 ‘좀 더디거나 어설퍼도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라면 그것 역시 편견이다.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라는 사전 정보가 없다면 거의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윤미영(30·시각장애 1급) 바리스타와 박현희(43·시각장애 4급) 바리스타가 만들어 내는 커피는 여느 카페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맛도, 스피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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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중도 실명으로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박현희씨는 9월부터 카페모아에서 일하고 있다. 마흔셋, 장애가 없는 일반 주부라하더라도 재취업이 쉽지 않은 나이이기에 그녀에게 카페모아라는 공간은 의미가 크다.
“요즘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아요. 집에 있을 땐 무기력감과 우울증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러다 바리스타를 꿈꾸게 됐죠. 실로 암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바리스타 창업훈련 교육’을 마치고 취업하게 됐어요. 일하고 있다는 게 뿌듯하죠. 엄마가 활기차지니 무엇보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박씨는 “고3 아들은 수능 끝나면 친구들 다 데리고 와 엄마가 만들어준 커피를 사 마실 거라고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앞으로 기술을 좀 더 익혀 라떼아트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그녀는 “4, 5년 뒤엔 작은 카페를 차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윤미영씨는 카페모아의 터줏대감이다. 2009년 카페 개업 당시부터 바리스타로 일해 오고 있다. 윤씨는 지난해 한국커피연합회(KCA)가 주최한 KCA바리스타클래식 대회 장애인 부문에 다른 직원들과 함께 팀을 이뤄 참가해 레이크사이드상을 수상하는 등 그 실력도 인정받았다. “이제는 익숙해져 일하는 데 전혀 불편함을 못 느낀다”는 윤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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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모아에서 일하는 시각장애인 직원들은 비장애인들보다 시야가 좁거나 시력을 잃어 기계버튼 위치를 기억하고 카페 내부 동선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움직여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시각이 아닌 촉각, 후각 등을 총동원해 30여 가지 커피와 음료를 만들어 내고 있다. 커피 만드는 노하우를 묻자 박현희씨가 말했다.
“아이스 카페라떼를 만들 때는 잔을 꼭 잡고 우유의 차가운 촉감으로 우유량을 조절하고, 카푸치노를 만들 때 거품의 농도는 우유 끓는 소리가 알려줍니다.”
카페모아에는 박씨와 윤씨를 비롯해 현재 5명의 시각장애인이 일하고 있다. 하루 2교대 근무로 한 팀에 비장애인인 매니저 1명과 시각장애인 2명이 배치돼 일한다. 비장애인인 매니저는 주로 주문과 계산을 담당하고 실제 음료나 커피 만들기는 시각장애인 직원들이 도맡고 있다. 조금 조심스러울 뿐 청소와 설거지 등도 무리 없이 척척 해낸다.
카페모아는 2009년 실로암복지관에서 여성시각장애인 일자리창출을 목적으로 만든 곳이다. 수익보다는 여성시각장애인이 새로운 능력을 발휘하고 다양한 직종에서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취지였다. 카페모아 개업 당시에는 주로 실로암복지관을 이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았지만, 차츰 주변에 입소문이 나면서 일대 회사원들이나 주민들의 이용률도 높아져 이제는 오히려 일반인 이용의 비율이 더 높다.![]()
요즘엔 하루 평균 2백40~2백50명의 이용객이 찾고 있다. 카페모아의 안정적인 유지 비결에 대해 박옥련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국장은 “카페모아 개업 후 몇 년 사이 주변에 커피전문점 등이 생겼지만 ‘고객의 평가는 냉정하다’는 생각에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그를 통한 개선, 교육 등으로 경쟁력을 높여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착한 가격’도 카페모아의 경쟁력이다. ‘공생’을 실천하고자 커피와 함께 간단히 먹을 만한 제과·제빵류 등은 저소득 계층의 자립과 자활을 지원하는 관악봉천지역자활센터의 ‘맛있는 베이커리’에서 만든 것을 제공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은 직업 선택의 폭이 다른 장애인에 비해 상당히 좁습니다. 대개는 선택의 여지 없이 안마사로 일하는 경우가 많죠. 여성시각장애인의 사회참여율은 더욱 낮은 상황입니다.” 박 국장의 말이다. 그는 “실제로 카페모아를 운영해 보니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여성시각장애인들에게는 꽤 잘 맞는 직업이었고, 카페 내 대부분의 업무 역시 시각장애가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여전히 동종 업계로의 취업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박 국장은 “업체 사장들도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카페 운영에 대해서는 업무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래도 직접 고용은 부담스러워하고 있다”고 했다.
카페모아 직원들은 “앞으로 2호, 3호점이 생겨 많은 여성시각장애인이 바리스타의 꿈을 이뤄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글·박근희 기자 / 사진·한용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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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