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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발이 너무 못생겼다. 여기저기 굳은살이 박혀 있다. 물집도 더러 있다. 손도 마찬가지다.

곤봉, 볼, 후프, 줄, 리본 등 여러 수구(손에 가지고 하는 도구)를 잡고 연기하기에 편하게 변형됐다. 다섯 살 때 빨간 리본을 들고 춤추는 예쁜 언니들이 마냥 부러워 시작한 리듬체조. 세월은 손연재(세종고 2)에게 못생긴 발과 손을 안겨 줬지만, 고된 시간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


손연재는 지난 9월 25일(현지시각)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끝난 2011 세계리듬체조선수권대회 개인 종합 결선에서 11위(4종목 합계 1백 7.750점)에 올랐다. 결선 순위 15위까지 주어진 2012년 런던올림픽 출전권을 여유롭게 따냈다. 지난해 모스크바 세계선수권에서 32위(4종목 합계 98.625점)에 들었던 손연재는, 1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

대회를 지켜본 한 프랑스 현지 기자는 “1년 만에 순위를 21단계나 끌어올린 선수는 리듬체조 역사상 손연재밖에 없을 것”이라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몽펠리에 현지에서 손연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손연재의 에이전트로 함께 몽펠리에에 머물렀던 아이비(IB)스포츠의 문대훈씨는 “경기장 분위기를 보면 선수의 인기도를 잘 알 수 있다. (손)연재의 연기가 끝나면 정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며 “동양에서 온 귀엽고 가녀린 소녀가 정사각의 무대에서 당당하게 연기를 펼쳐서 그런 것 같다”고 밝혔다.

손연재가 리듬체조계의 샛별로 떠오른 것은 2009년이었다. 국제주니어선수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3관왕에 올랐다. 동그란 두 눈에 귀염성 있는 외모, 그리고 꾸밈없는 환한 미소는 리듬체조가 생소했던 국내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손연재는 민첩성과 균형성, 유연성이 탁월하고, 수구(기구) 다루는 솜씨도 수준급으로 평가받는다.

손연재는 시니어 데뷔 해였던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 때 개인 종합 동메달을 따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리듬체조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국 선수가 획득한 첫 번째 메달이었다.




이번에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신수지(20·세종대 3)에 이어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두번째로 올림픽 자력 진출자가 됐다. 신수지는 당시 개인 종합 12위의 성적을 냈다. 신수지가 개척자라면, 손연재는 도전자라고 할 수 있다.

손연재의 무한한 잠재력은 러시아 전지훈련을 통해 싹텄다. 1월 초부터 러시아 대표팀 훈련지인 모스크바 노보고르스크센터에서 세계 톱 선수들인 예브게니아 카나예바, 다리아 콘다코바(이상 러시아) 등과 함께 하루 8~10시간씩 지독한 훈련을 이어 왔다. 부모님이나 에이전트 없이 혈혈단신으로 러시아로 건너가 ‘나 홀로’ 훈련하다 보니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에 현지 러시아 코치진의 칭찬이 연일 이어졌다.

손연재는 “런던올림픽 행이 확정되는 순간 울컥했다. 러시아에서 혼자 힘들게 훈련하던 시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러시아 전지훈련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훈련한 게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손연재는 현재 광고 촬영을 통해 얻은 수입의 3분의 2 이상을 전지훈련비로 쓰고 있다. 한 달에 약 3천만원가량 드는데, 후원기업이나 에이전트의 도움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손연재는 10월 6일부터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참가한 뒤 10월 말 또다시 러시아로 출국한다. 12월 중순까지 러시아에 머물면서 이번 시즌 선보였던 안무를 보완하고 수정할 계획이다. 연말 잠깐 귀국했다가 다시 ‘약속의 땅’으로 되돌아간다.

2012년 런던올림픽 목표는 뚜렷하다. 세계 톱10 진입이다.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어느 누구도 밟아 보지 못한 영역이다.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의 한계를 딛고 세계 피겨 여왕으로 등극했던 것처럼 손연재 또한 조금은 버거워 보이는 세계 톱10 고지를 향해 한걸음씩 내딛고 있는 셈이다.


이번 세계선수권 1~10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유럽 선수들이 독차지했다. 러시아 및 동유럽 국가의 전유물이다시피 한 리듬체조에서 동양 선수가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틈이 없어 보인다. 세계선수권 9위 이내 입상자들은 모두 4종목 평균이 27점대를 넘었다.

1, 2위에 오른 카나예바와 콘다코바 모두 볼 종목에서만 28점대를 받았을 뿐 3종목에서 29점대 이상을 기록했다. 손연재는 후프(26.625점), 볼(27.075점), 곤봉(27.150점), 리본(26.900점) 등 4종목에서 평균 26.938점을 받았다. 세계 톱10에 들기 위해서는 4종목 모두 안정적으로 27점대를 받을 수 있어야만 한다.

서혜정 대한체조협회 리듬체조 기술부위원장은 “손연재가 좀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난이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몸짓으로 하는 기술인 신체 난이도는 물론, 수구의 숙련도를 측정할 수 있는 수구 난이도를 모두 발전시켜야 한다”며 “프로그램 난이도를 좀 더 높여 가야 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겉으로 보기에 한없이 여려 보이지만 안으로는 강한 투지와 근성, 그리고 열정을 품고 있는 손연재. 그의 리듬체조 인생 2막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글·김양희 (한겨레신문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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