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젊은 소리꾼 강민지(27)씨의 공연을 처음 접했을 때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몇 해 전 전북도청에서 있었던 야외무대공연에서였다. 공연 중 소낙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비에 관객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강씨가 무대 위로 걸어 나오더니 즉흥적으로 판소리 <춘향가>의 ‘사랑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곧은 모습과 목소리에서 나오는 비장함이 관객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들은 ‘사랑가’의 애절함이 비와 어우러진 속에서 자리를 지켰다.
전남 구례 태생인 강씨는 부모님께서 바쁘신 탓에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평소 국악에 관심이 많으셨던 할머니가 어느 날 아무것도 모르는 일곱 살 손녀에게 권했다.
“너 소리 한번 배워볼래?”
그렇게 소리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그는 소리를 배우기 위해 할머니와 버스를 타고 남원까지 왕래했다.
“일곱 살짜리 여자아이가 소리 배우겠다고 아장아장 쫓아다니니 첫 스승님이셨던 강도근 선생님께서 절 예쁘게 보셨던 것 같아요.
간식거리부터 차 태워 보내는 것까지 친손녀처럼 챙겨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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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사랑이 더 깊은 배움의 길로 이끌었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고비를 맞았다. 무엇보다 집안의 경제사정이 크게 어려워졌고, 급기야 소리 공부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그때 지금의 스승인 이난초 명창을 만나게 됐어요. ‘산 공부(산에서 국악 공부 하는 것)’를 하는 동안 어머니처럼 보살펴주시고 챙겨주셨죠. 어느 날 몸이 훌쩍 커버린 제게 여성 속옷을 사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민지야, 꿈이 있거든 포기하지 말고 그것만 바라보며 노력하고 노력하거라.’”
그는 그때부터 ‘포기보단 조금 더 노력하자’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강씨는 ‘경제적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생활비를 벌고자 수업 없는 시간에는 공연을 했다.
“국악을 하시는 어른들께선 소리 공부를 더 해야 할 시기에 공연을 그리 많이 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제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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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과 공부 사이의 불안함 속에서 그는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택했다. 바로 ‘나르샤’다. 나르샤는 2008년 창단된 국악 실내악단. 순우리말로 ‘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국악의 아름다움을 국내와 세계로 널리 날려 보내겠다는 의미를 지닌 나르샤는 국악 공부를 위한 스터디 그룹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발전해 정기공연도 하고 초청공연도 한다.
“공연이 있을 때면 주변에서 외국인 친구들을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오기 위해 노력해요. 한 분이라도 더 우리 국악의 미를 느낄 수 있게요.”
그는 외국인 앞에 서는 자리에서는 조금 더 신경을 쓴다. 혹여 자신이 전통국악의 아름다움을 잘못 보이진 않을까 우려해서다.
지난 8월, 인천대에서 나르샤의 공연이 있었다.
공연은 세미나 프로그램 중 하나였으며, 외국인 대학교수들이 주요 관객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그는 일찌감치 무대 준비를 마치고 직접 영어로 판소리 순서와 곡을 설명하기 위해 되짚어보고 있었다.
인천에서의 공연을 마친 강씨에게 ‘아리랑’을 잘 들었다고 말하자 “사실 저희 같은 국악 전공자는 ‘아리랑’을 부를 일이 적어요. 하지만 오늘 ‘아리랑’을 부른 것은 중국이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자신들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 한다기에 조금이라도 더 우리의 ‘아리랑’을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어요”라고 곧은 모습과 목소리로 답했다.
강씨는 덧붙여 자신의 소리에 대해서도 말했다. “일곱 살 나이에는 사랑을 해봤을 리도 만무하고, 배고픔을 알기도 힘들었죠. 자라면서 배도 고파보고, 짝사랑과 이별도 해보니 ‘사랑가’의 애틋함도 ‘흥부가’의 애절함도 알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우리의 소리가 ‘기교의 음악’이 아닌 ‘감동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듣는 이와 부르는 이의 감성이 충분하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노래야말로 한국의 전통음악이에요. 제가 평생에 걸쳐 하고 싶은 소리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감동의 소리예요.”![]()
그는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매 순간 용기를 내어 삶의 무대에 오르고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자부심인 것 같아요. 무대에서 얼마나 잘 불렀는지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우며, 나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자부심을 갖는 것이 자기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갈채인 것 같아요. 분명 우리 세대 모두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해요.”
글ㆍ안시준 (연세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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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