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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입상 피아니스트 손열음




손열음씨는 자신을 ‘콘서트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한다. 잘하는 일이 연주고, 또 하고 싶은 일도 연주뿐이라는 의지를 강력히 표현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튀는 행동을 일삼거나 어린 나이의 성공을 믿고 제멋대로인 것도 아니다. 그는 “내 연주를 들어 준 고마운 팬들이 보내는 트윗에 일일이 댓글 인사를 하고 있다”며 해맑게 웃는다.

그는 전형적인 신동의 수순을 밟은 연주자다. 어릴 때 재능을 발견했고, 이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도 만났다. 미국 오벌린 국제 콩쿠르(1999년), 독일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2001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 콩쿠르(2002년)에서 최연소 1위를 차지하며 타고난 재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참가하는 콩쿠르마다 대부분 최연소 1위로 입상하는 등 타고난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열다섯 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 전형에 최연소로 합격해 김대진 교수를 사사했고, 6년 전부터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의 지도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14일 미국 연주를 마치고 독일 하노버의 집으로 돌아왔다.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열리기 약 한 달 전이었다. 이때부터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만, 콩쿠르 경력을 더 쌓지 않아도 되는 입장에서 또다시 콩쿠르를 준비하는 마음도 편치만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다른 걸 할 수 없어서 콩쿠르에 나간 것 같아요. 음악은 스포츠와 달라서 잘하고 못하고를 성적으로 매기는 것 자체가 모순인데요. 콩쿠르로 뜬 연주자가 진짜 실력이 있는지, 콩쿠르 운은 없지만 대단한 내공을 가졌는지는 또 모르는 일이거든요. 운도 상당히 작용하는 것 같고요. 음악계에서 잘되려면 해야 할 복잡한 일이 무척 많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적성에 안 맞아요. 그래서 연주만 하며 지내려고요.”




이번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상금은 적지 않다. 2천만원에 가까운 상금을 어디에 쓸까.
“제가 콩쿠르에서 상금을 많이 받아 봤지만 …,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러시아 은행에 제 계좌를 개설해 입금해 놓고 통장과 국제 현금카드를 주신 거예요. 보통 수표나 계좌로 보내 주거든요. 아무튼 엄마에게 드렸는데, 현금카드가 우리나라에서 읽히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시 러시아에 가야 하나요.(웃음)”

그는 ‘어머’ ‘으하하’ ‘완전 최고’라는 표현을 좋아했다. 무슨 질문을 던져도 재미있게 대답하고, 똑 부러지게 말도 잘했다. 그 나이또래가 가진 생기발랄한 구석도 있고, “결혼이라는 제도는 세상과 맞지 않는다”거나 “독일에서는 물보다 싼 맥주를 완전 사랑한다”는 식의 세상 철학도 뚜렷했다.

하지만 그는 피아노 앞에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주문을 외듯 연주하는 중간중간에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섬세한 표정을 때때로 바꾸며 음악과 함께 숨을 쉬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마치 피아노를 장난감삼아 가지고 노는 것 같다.

그는 객석을 압도하는 재주가 있다. 지난 6월 차이콥스키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그는 빨간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또 중얼중얼거리면서 훌륭한 무대를 선보였다. 당시 그의 연주를 보려고 온 1천여 명의 관객 전원으로부터 기립박수까지 받았다. 자신의 무대를 보고 감동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그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가장 행복해한다.

그는 지난 7월 첫째 주에 모스크바에서 귀국한 이후 올 연말까지 쉴 틈이 없다. 7월에는 부천필, 인천필, 대관령국제음악제 상주오케스트라와 협연했고, 8월에는 원주시청 연주회, 대관령국제음악제 실내악 연주, 7인의 음악가들, 광복음악회, 피스 앤 피아노 페스티벌, 9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씨와 듀오 리사이틀, 독주회까지 매달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매번 무대에서 같은 곡을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힘들지 않을까.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일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바로 지휘다.
그는 “연주처럼 지휘를 전문적으로 배울 계획은 전혀 없다. 그것은 지휘를 전문적으로 배워 온 분들에게 무례한 일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몇 작품을 지휘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해 보고싶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여성 지휘자 중 성시연 선생님은 최고였어요. 아무리 대단한 명성을 가진 지휘자라도 지휘할 때 반드시 한두 부분 엇나가기 마련이거든요. 성시연 선생님과 연주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3번도 매번 틀리는 부분이 있는 작품인데, 이번 연주에서는 말끔히 지나갔어요. 완벽한 지휘였어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성시연씨와 협연 무대를 마친 다음날, 원주 고향 집에서 휴식 중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날 공연의 감동을 이루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살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스물다섯, 젊은 피아니스트의 앞날은 분명 지금보다 더 환해질 것이다.

글·정은주 (톱클래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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