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하든, 세상을 바로 알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택한 게 무전여행이죠.”
안시준(26)씨는 ‘무전여행’이 세계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매순간 잠자리,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니 세상과 뒤엉킬 수밖에 없죠. 그렇게 보고 듣고 느끼며 세상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물론 대학생이라 돈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그는 스무살에 처음 국내 도시를 돌았고, 그다음에는 마을들을 여행했다. 그렇게 2004년 부터 2년간 한국을 다 보고 나니 자연스레 일본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일본 무전여행에서 이어진 것이 세계일주다. 그는 2009년 6월부터 1년3개월 동안 5대륙 39개 국가를 여행했다.
“처음 여행을 시작한 순간부터 일본 여행까지는 하루 일하고 하루 얻어먹었어요. 하지만 그다음 미주 대륙으로 넘어간 후에는 하루 일하고 하루 얻어먹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미주 지역 사람들은 노동을 굉장히 신성시했어요. 그래서 노동을 우습게 본다고 많이 혼나기도 했습니다.”
가끔씩 임시직으로 일을 해도 항시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필리핀에서 사업을 시작한 대학 선배의 도움으로 필리핀에서 일을 해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돈은 캐나다를 향한 도전의 바탕이 됐다.![]()
“캐나다에 도착해 고물차를 사 차에서 생활하며 미국까지 여행했어요. 여행 도중 돈이 떨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한국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할까도 생각했죠. 한번은 친한 친구에게 온라인 채팅을 해서 세계일주 중이라고 했더니 ‘보이스 피싱’ 아니냐 의심하더라고요. 사실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세계일주를 완주하지 못할까봐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거든요.”
시준씨는 이러한 여정들을 아주 쉬운 듯 말했지만, 정말 고생 많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살아서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 자체가 저의 특별한 능력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시준씨는 2010년 있었던 칠레 대지진과 버스 사고, 택시 강도, 축구 폭동, 집단 사기 등 많은 사건·사고로 위험한 순간들을 겪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오히려 삶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별수 있나요. 사건은 벌어졌고 울고불고해봤자 답은 없잖아요.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바로 행동에 옮겨야죠. 그러다 보면 시간은 흘러가고 하나둘씩 해결돼 있었어요. 정말 안되겠다 싶으면 어머니가 끓여 주시는 따뜻한 된장국이 있는 집으로 돌아오면 되니까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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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나를 앞에 두고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그는 시종일관 장난스런 말투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다녀와서 변한 것들이야 많겠죠. 뭐라고 딱히 잘라 말씀드릴 순 없지만, 여행 도중 많이 웃을 수 있었어요.
소소한 웃음이나 미소, 그 자체가 상대방과 저를 행복하게 하더라고요.”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소를 얻었고, 그 미소는 가장 큰 기념품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어서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찡그리게 된 일들도 있었어요. 한번은 볼리비아 우유니에서의 일이었어요. 작은 마을 우유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 중 하나인 우유니 사막으로 통하는 출입구인데, 도로가 없는 그 사막을 보기 위해선 주민들의
지프가이드를 받아야 했어요. 주민들 한분 한분 붙잡고 가격을 흥정하는 동안 다들 잘 대해 주셨는데, 제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분들 태도가 돌변하며 전액 선불 아니면 계약을 하지 않겠다더군요.”
시준씨는 “알고 보니 계약을 하고서도 아무런 통보 없이 더 나은 조건의 가이드를 찾는 한국인들 때문에 주민들끼리 싸움이 일어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전하면서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국가 브랜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돌아와 현재 국가브랜드위원회 대학생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있다.
“저희 세대는 ‘한국’이라는 국적과 함께 세계로 도전하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어린 시절에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성장해선 미국 영화를 접하고, 대학생이 된 후엔 해외 교환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방학 때에는 유럽 여행을 꿈꾸거나 제3국으로 봉사활동을 가는 저희는 분명 한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에 가장 많은 도전을 하는 청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의 습관과 행동, 그리고 말 하나하나가 한국의 국가 브랜드와 직접 연관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앞으로 할 일들을 계획하고, 여행에서 얻은 용기들로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1년 뒤에는 지금 국가브랜드위원회 대학생 서포터스 친구들과 함께 한국을 알리는 획기적인 기획을 들고 세계 일주를 한 번 더 하고 싶어요.
북미에서는 우리 음식문화를 알리고, 남미에서는 전통 예악을 알리고, 유럽에선 기술력의 홍보를, 그리고 아프리카에선 봉사를, 아시아와 호주에선 ‘한류’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까지 어려움이 많겠지만 하나하나 풀어 간다면 어느 순간 이뤄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준씨와 마주 있는 동안 그를 통해 ‘도전’이라는 단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됐다. 무모하다 할 수도 있는 그의 ‘도전’은 더 큰 세계를 위한 도약이자 창조적 준비단계였다.
글·김남호 (서울대 농산업교육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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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