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진정한 한류는 대중문화의 수출이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와 전통음식을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김치를 통해 우리의 전통음식을 세계에 알리는 한류의 촉진제가 되고 싶습니다.”
김치 쇼핑몰 ‘짐치독’을 운영하고 있는 스물다섯 노광철씨의 포부다. 지난 2009년부터 ‘짐치독’을 운영해 온 그는 “김치는 우리의 전통음식이자 전통산업인데 젊은이들이 이끌어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문을 열었다.
작년 짐치독의 매출은 약 6억원. 순수익만 약 6천만원이다. 노 대표는 이 수익금 전부로 다시 김치를 담가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나눠줬다. 기부는 사실 그의 생활이다. “어릴 적부터 읽은 책은 모조리 기부해 버리는 통에 집에는 남아 있는 책이 별로 없을
정도다”고 말한다.![]()
“초등학생 때 한 번은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어요. 집이 다 타 버렸지만 적십자사에서 구호물품을 보내 줘서 생활할 수 있었어요. 그 일이 계기가 돼 저도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노 대표가 수익 전액을 기부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가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 전문경영인이 되는 것이 제 꿈이에요. 그래서 저는 1년, 10년, 50년 계획을 다 세워 놨어요. 하지만 이 계획을 이루기 위해 남들과 똑같이 스펙 쌓기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저만의 이야기와 경험을 만들고 싶었지요.”
노 대표가 김치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2008년 군대에 있을 때였다. 당시 중국산 김치를 한국산으로 속여 팔다가 적발된 사건의 신문 기사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김치는 우리의 전통음식이고 끼니마다 먹는 음식인데 믿고 먹을 수 있어야 된다’는 것이 노 대표의 생각이었다.
결심이 선 뒤 노 대표의 여가 시간은 김치 공부로 채워졌다. 취사병에게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김치 관련 책을 찾아보는 것이 그의 일상처럼 돼 버렸다. 그리고 전역을 하기도 전인 말년 휴가 때 그는 김치 점포를 덜컥 계약해 버렸다.
“그때 저지르지 않으면 아마도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시작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확 저질러 버렸지요. 사업을 위한 기초 작업은 이미 끝낸 상태였으니까요.”
하지만 김치 사업은 시작부터 큰 난관을 맞았다. 이론만 알았지 정작 제대로 된 김치맛을 낼 줄 몰랐던 것이다. 그때부터 노광철 대표는 자신만의 레시피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익을수록 풍부한 맛이 나는 전라도 김치는 저장성을 위해 젓갈을 많이 사용하는데, 문제는 젓갈의 비린 냄새였다. 젓갈 비린내를 없애는 것이 맛의 관건이라 생각한 노 대표는 해안가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비법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사업을 시작한 지 꼬박 1백 일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김치맛을 내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김치맛을 찾았으니 이제 김치를 알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위해 그는 발로 뛰기 시작했다. 우선, 밥과 김치를 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좌판을 벌였다. 학교 동문회마다 김치를 들고 찾아다니기도 하고, 노점상들과 싸움이 붙거나 단속에 걸려 좌판이 엎어지는 일도 다반사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소심한 성격에 가까웠던 그에게 특히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며 홍보를 하는 일은 힘든 과정이었다.
이런 노력 끝에 얻어낸 첫 대량 거래처는 다름 아닌 교도소였다.
그는 재소자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특식에 갓김치로 응찰, 1톤 물량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첫 대량 납품이 쉽지만은 않았다. 갑자기 내린 폭설로 김치로 만들 갓을 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 대표는 돌산갓으로 유명한 여수로 무작정 내려갔다.
“농장에 갓은 있는데 농장주가 일본에 수출해야 할 물량이라며 팔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는 우선 인부들에게 일단 갓을 뽑으라고 했어요. 그리고 농장주에게 가서 ‘지금 인부들이 갓을 뽑고 있다. 그러니 갓을 팔아 달라’고 설득했지요.”
어렵게 갓을 구하자 이번엔 김치를 담글 사람을 구할 수가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 이번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온 가족이 4일 밤을 새워서 김치를 담갔고 결국 시간 내에 김치를 납품할 수 있었다.
계약을 따내는 일부터 재료 수급, 김치를 담그는 것까지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 결과는 2백만원의 적자로 이어졌다.
“금전적으론 2백만원을 손해 본 건 사실이지만 대신 2백만원보다 값진 경험을 얻게 됐으니 손해 본 장사는 아니지요.”
짐치독의 김치맛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매출도 점차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배추 파동이 일면서 또 한번 시련이 닥쳤다. 많은 김치 업체가 위기를 맞았지만 노 대표는 이를 기회로 생각했다.
“사실 작년 봄부터 배추는 이미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어요.
게다가 추석 즈음엔 덥고 비도 많이 와서 물량이 없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처음으로 대출을 받아 냉장 창고를 지어서 창고에 배추를 가득 채워 놨어요.”![]()
이런 노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얼마 후 배추 파동이 터지면서 많은 김치 업체가 생산을 중단하거나, 김치 가격을 몇 배로 올리는 와중에도 노 대표는 ‘배추 파동을 이용해 돈을 벌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이는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바탕이
됐다.
그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는 요즘 짐치독의 미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입맛을 잡기 위해 그는 ‘파프리카 김치’ ‘인삼을 접목한 김치’ 등을 만들었다. 이런 끊임없는 시도를 하다 보니 지난 4월, 그는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통해 ‘이색김치 최강달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같은 또래 젊은이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스펙 경쟁에 눌려 20대의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변화에 수동적으로 적응하기보다는 변화를 이끌어가는 20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과 사진·김성훈 (공감코리아 정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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