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전국에 수많은 농촌체험마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딜 가나 떡메치기, 투호 등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 그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어요.”
김미희 농촌진흥청 연구관의 목소리가 조금씩 높아졌다. 농촌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 이를 지역 활성화에 활용해야 한다는 대목에선 열정이 느껴졌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이 명소가 된 것은 언덕 자체의 아름다움보다 이곳에서 유래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시와 노래 덕이라는 얘기다. 김 연구관은 ‘한국의 로렐라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관광 전문가들은 관광산업의 성패는 ‘재방문율’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농촌체험마을의 재방문율은 얼마나 될까요. 지역의 독특한 자원을 활용하지 않은, 천편일률적인 프로그램으론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흔하디흔한 돌뿌리라도 이야기가 붙으면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이 이야기를 매개로 여행객과 지역민이 교류하고 공감한다면 재방문율을 높일 수 있을 겁니다.”![]()
김 연구관은 최근 <구전자원은 어떻게 스토리가 되는가?>라는 책을 냈다. 농촌의 구전자원(口傳資源), 문헌이 아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충청남도 서천군에 동죽마을이 있다. 마을 동쪽에 대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최근엔 ‘황새 마을’로 더 유명하다. 과거 황새가 많이 찾아들었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새 이름이다. 지금에야 찾아보기 어렵지만 이 마을에 황새와 얽힌 옛이야기가 적잖다는 사실에서도 황새가 이 마을의 ‘상징’인 시절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명도 황새에서 유래한 것들이 꽤 있다. 당장 마을 초입의 논부터 ‘황새들’로 불린다.
황새의 방문이 끊겼지만 황새는 이 마을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황새가 돌아올 수 있도록 마을 주민 대부분이 친환경 농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마을 곳곳에는 황새 조형물이 들어섰다. 입소문이 나면서 마을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늘었다.
“황새에 얽힌 이야기와 황새를 기다리는 마을 주민들의 마음, 전해 내려오는 풍습과 노래, 이 마을 특유의 농업 기술이 어우러진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면 어떨까요. 이 마을이 특별해지지 않을까요.
궁극적으로는 지역 주민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마을에 활기가 도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김 연구관이 내놓은 책은 황새마을을 비롯해 충남 옥천 장수마을, 경북 경주 장사마을 등 3개 자연마을의 이야기와 노래를 발굴하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 직접 현장을 찾아 마을 어른들과 어울리며 함께 기억을 더듬으며 길어 올린 이야기와 노래로 기둥을 세우고 연관된 체험 프로그램으로 서까래를 올렸다.![]()
“옥천 장수마을에 옛 노래 잘하시는 어른이 있다고 해서 녹음기를 둘러메고 갔어요. 그런데 막상 나오는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었어요. 이 어른을 몇 년 전에 인터뷰한 분이 있다고 해서 당시 녹음한 노래를 얻어서 다시 찾아갔죠. 녹음된 노래를 들려주니 그때서야 기억을 떠올리시더라고요.
마을의 옛이야기를 기억하시는 노인들이 줄어들고 세월에 따라 기억력도 쇠퇴하고 있어요. 하루라도 빨리 농촌의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야 합니다.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잖아요.”
농촌진흥청은 1997년부터 농촌의 구전자원 연구를 시작했다.
관광상품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무렵 우리나라가 가입한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른 조치였다. 이 협약의 8조 j항은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해 전통문화를 발굴, 유지할 것을 권하고 있다. 지역 환경과 어울려 발전한 지역의 농업 기술과 문화가 생물다양성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어렵사리 발굴한 농촌의 구전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농촌체험마을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소재로만 사용하기엔 아까운 것이 사실이다. 김 연구관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영화나 만화의 소재로도 엮을 수 있을 것이고 음반을 낼 수도 있다. 독립영화로서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워낭소리>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다 똑같아 보이잖아요. 농사 방법이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음식도 비슷비슷해 보입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같으면서도 다른 게 있어요. 또 다른 곳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활용하면 독특하고 신선한 문화콘텐츠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김 연구관은 올해 안에 음반을 낼 계획이다. 이번에 발굴한 민요들을 녹음하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홈페이지에도 노래를 내려받을 수 있게 하고 스마트폰의 앱으로도 개발할 생각이다. 책에는 약 30편의 노래를 채록한 악보가 실려 있다. 그 중 한 토막.
‘올케와 빨래를 갔다 물에 빠졌네. 동생을 젖혀두고 마누라부터 건지더라. 야속하고도 무정하네. 우리 오빠가 야속하네. 나도 죽어 저승 가서 남편부터 챙겨야지. 오빠는 죽어서 개구리가 되고 나는 죽어 서어뱀이 되어 이삼사월 긴긴 해에 풀밭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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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재산권 측면에서도 옛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 고유의 지식재산이 도둑질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다. 우리 민간요법에 ‘닭발을 고아 먹으면 관절에 좋다’는 게 있다. 미국의 한 회사가 여기에서 착안해 약을 개발해 특허를 냈다. 이 약을 먹으려면 당연히 로열티를 내야 한다. 김 연구관은 이를 정당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국제적으로도 전통문화의 해적 행위에 대한 논란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통문화를 도용했다는 이유로 특허가 취소된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의 옛 문화와 이야기를 우리 것으로 인정받지 않으면 해적행위의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전통문화를 최대한 발굴하고 이를 법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전통문화와 관련된 법률 연구를 올해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글·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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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