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밤, 엄마는 아픈 배를 부여잡고 골목에서 풀빵을 판다. 그 시간 일곱 살, 다섯 살 난 두 아이는 24시간 운영되는 어린이집에서 이불을 펴고 잠잘 준비를 한 뒤 두 손 모아 기도를 한다.
‘우리 엄마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엄마가 빨리 나아서 저희도 집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3년 전 대한민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MBC <휴먼다큐 사랑-풀빵엄마>(이하 ‘풀빵엄마’)의 한 장면이다. 위암 환자인 싱글맘 최정미씨는 항암 치료로 피폐해진 몸을 이끌고 새벽부터 풀빵 반죽을 준비한다. 사랑하는 가족,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 딸과 아들을 위해서다.
자신이 아파 쓰러지는 순간에도 아이들 걱정이 더 컸던 최씨, 그리고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살뜰하게 챙기던 큰딸 은서와 천진난만한 아들 홍현이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결국 최씨는 방송이 나가고 두 달 뒤 세상을 떠났다.![]()
최근 ‘풀빵엄마’ 이야기가 동화책으로 만들어졌다. 6개월 동안 최정미씨 가족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눈물지었던 다큐멘터리 작가 노경희(43)씨가 작가적 상상력을 보태 동화로 엮었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엄마가 아이들에게 남긴 영상편지인데, 노 작가 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었을 법한 이야기를 글로 옮겼다고 말한다.
“일 년에 두세 번 작은 선물을 들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긴 하지만 그 외에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은서와 홍현이도 읽을 수도 있는 동화를 펴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50분 방송에서 미처 담지 못했던 ‘엄마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아이들에게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화를 만들었어요.”
현재 은서와 홍현이는 이모를 엄마, 이모부를 아빠라 부르며 잘 지내고 있다. 두 아이와 함께 살기로 하면서 이모는 방이 하나 더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은서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처럼 여전히 춤추는 걸 좋아해 댄스아카데미에 다니고,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홍현이는 주말마다 축구교실에 다닌다.
노 작가는 “아이들의 최근 모습”이라며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줬는데, 그 속에서 아이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경희 작가는 최정미씨를 지켜보면서 싱글맘이 얼마나 강한 의지로 사는 사람인지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자신의 성으을 따르게 한다는 것은 어떤 버팀목도 없이 두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강한 의지이고, 이는 곧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뜨거운 모성애로 분출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최씨는 자신의 아픔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당장 쓰러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풀빵을 구웠고, 모처럼 아이들과 함께 있는 날에는 엄마의 사랑이 아이들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지도록 따뜻한 밥을 지었다.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걸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최씨는 아이들이 집에 올 때만이라도 엄마 노릇을 하려 무척이나 애썼다고 한다.
“정미씨와 아이들은 방 한 칸에 부엌이 딸린 모자원에서 지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리고 왔는데, 어쩔 때는 배를 쥐어짜는 듯 심한 통증이 밀려와 제대로 아이들을 챙기지 못할 때도 있었죠. 그러면 은서가 알아서 동생을 다 챙겼어요.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동생 세수를 시켜 주고, 옷도 갈아입히고요. 그 모습이 참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많이 아렸어요.”
은서의 의젓한 행동은 어린이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에게 자기 몫의 간식을 군말 없이 내주고, 엄마 대신 누나의 귓불을 만져야만 잠이 드는 동생을 위해 밤마다 늘 옆자리를 내줬다. 해가 지자 능숙하게 잠자리를 펴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노 작가는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는 처음 풀빵엄마 사연을 접했을 때 ‘은서’라는 이름에 강하게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현재 초등학교 5학년인 자신의 큰딸 이름과 같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을 쓸 때도, 동화를 쓸 때도 노 작가는 진짜 은서와 홍현이의 엄마가 됐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몰입할 수 있었다.
노경희 작가는 93년 MBC <新인간시대>로 방송에 입문해 <북극의 눈물>, <휴먼다큐 사랑-너는 내 운명>, <안녕 아빠> 등 1백여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누구보다 바쁜 워킹맘이었던 그는 풀빵엄마를 만난 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달으면서 지난해부터 일을 줄이기 시작해 현재는 <휴먼다큐 사랑>에만 집중하고 있다.
“해마다 가정의달 5월에는 사람들이 <휴먼다큐 사랑>을 보고 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의 사랑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왜 매번 암으로 죽는 사람들의 이야기냐, 희망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어떤 사랑도 가족의 죽음을 앞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홀로 떠나야 하는 이들의 사랑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남녀 간의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죽음 앞에서의 사랑과 비교가 될까요. <휴먼다큐 사랑>은 보통 사람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진짜 사랑을 그리려고 해요.”![]()
노 작가는 이달 방영되는 총 네 편 중 두 편을 맡았다. 하나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임신부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원인 모를 출혈로 대부분의 장기를 잘라낸 채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네 살배기 아이 이야기라고 한다. 해마다 <휴먼다큐 사랑>을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옆집 문을 열고 들어가 보듯,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온 노경희 작가. 그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사랑은…, 연민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고통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잖아요. 부부 간에도 ‘피곤해’ 하고 말하면 ‘너만 피곤하냐’라고 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래, 당신 정말 수고가 많아. 피곤하겠다’ 하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잖아요.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잘해 줘야겠다는 생각도 드는 거고,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곧 사랑으로 표현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측은지심, 그것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큰 본질이 아닐까 싶어요.”
글·김유림 (여성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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